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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M삼min Mar 31. 2024

9만 원씨

노동자의 적당한 소비는 얼마인가요?

월급, 3**만원

한 달 평균 일하는 날은 주말을 제외한 20-23일,

세금을 제하고 통장에 들어온 돈에서 보험료, 전기세, 가스비, 관리비, 대출이자, 부모님 용돈, 교통비, 휴대폰 요금을 다 제외하고 남은 돈을 다시 일하는 날의 최대치인 23으로 나눈다.

9만 원.


하루에 내가 9-6 혹은 8-7을 일하고 벌어 남은 돈이 하루에 9만 원.

회사는 포괄임금제를 도입하지도 않았는데, 버젯을 줄이라는 압박에 OT 수당 올리는 게 어렵다. 내가 몇 시간 야근할지 딱히 정해지지 않았는데 사전승인, 사후승인을 거쳐 추가근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인지 입증해야만 한다. 이러니 저러니 OT 사전승인을 올리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구조다.

 높으신 분들이야, 억대의 연봉을 받으니 OT 수당을 신청할 수 없지만, 월 3**만원을 받는 나에게 같은 이치를 들이밀다니, 참으로 억울하다.

 이직은 한창 건강하고 창창할 때, 회사가 너는 여기 아니면 갈 때 없잖아,라고 명명하기 전에, 반드시!

다 늙어 힘없어 주인과 산책도 못하고, 컹컹 우렁차게 짖어 집을 지키지도 못하는 노견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9만 원씨가 하루 얼마를 소비하고, 하루 얼마를 저축해야 이 서울 바닥에서 전세금을 떼일까 두려워하지 않으며 온전한 내 소유의 집을 장만할 수 있는가?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값이다.

9만 원씨가 90만 원씨에게 모진 고초를 겪고, 매일같이 하인으로 부려지며 온갖 잡무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다 못해 하얗게 재가되도록 탈탈 털리는 날이 쌓일수록 '나' 하나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하는 삶이 분하다. 분한 마음에 술을 들이붓는다. 다 그렇게 산다고는 하지만, 제 소유의 집과 몇 억대의 연봉을 가진 90만 원씨의 삶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


 해장국 한 사발에 소주 한 병을 들이붓고 주린 배와 마음을 채우고 만 오천원 결재 영수증을 보니, '9만 원씨'주제에 이 소비는 적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작은 매트리스 위에 몸을 누이면 위층의 인사가 전해온다. 네가 누운 그 공간은 절대로 온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대담한 소리의 폭격, 12시에도 탈수를, 3시에도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며 청소기 헤드가 벽을 꽝꽝 찍어대는 소음으로 나를 4년째 괴롭힌 위층에 또 손님이 찾아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내 삶이 죄이며, 타인과 천장을 공유하는 집에 사는 내 주제가 문제이다.

 마그네슘 두 알을 집어삼킨다. 알프람에 의지하며 살았던 지난 몇 년을 헹궈내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약에 의지해 '니나노' 하며 살기엔 내 삶의 속도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간다. 도피는 그만해야 한다. 천연 안정제라는 마그네슘을 들이켜고 잠을 청한다. 내 천장을 위층과 공유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 9만 원씨는 무엇을 더 희생해야 하는가?


편안한 역세권의 오피스텔, 그렇다 포기할 수 있다.

힘이 들어도 언덕을 올라야 하는 수고로움, 할 수 있다. 온전한 잠을 누릴 수 있다면.

전세금 혹은 반전세금의 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근저당이 없고 임차권등기 이력이 없는 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요, 구한다 한들 사는 내내 불안한 것은 똑같다. 내 돈을 내돈이라 할 수 없고, 내 집을 내 집이라 할 수 없으며, 임차인의 삶은 철처한 을이다.


9만 원씨가 잠이 들지 못하며 되뇌는 오늘의 상처와, 오늘의 고민은 얼마로 쳐 줄 수 있을까?

90만 원씨의 고함과 노기 어린 눈으로 나에게 했던 말이, 생때같이만 느껴지는 부당함이, 그리고 머리가 자라 이제 잡일이 하기 싫은 내 옹졸함이, 젖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새어 나와 베게잇을 적시느라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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