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만 원씨, 이런 거 저런 거 돈 주면 다 해요
꼭 본캐가 돈을 벌어올 필요는 없잖아요.
"집도 있는데 괜찮지 않아요?"
9만 원씨에게 들이미는 결혼 하지 않은 남자들은 다들 집이 있다고 한다. 집도 있고, 집 한 채가 있으며 집이 있다고 한다. 9만 원씨도 어쩌면 집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집이 딱히 어디에 있는 어떤 곳이라 말하기는 좀 애매한 것이겠지만.
9만 원씨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열심히 살면 지금보다는 더 오를 수 있을 줄 알았다. 월급이 주는 그 어렵다는 평범한 일상에 도취되고 외국계 무슨사 라고 말하면 조금은 비범하게 봐주는 타인의 시선으로 부족한 월급이 주는 공허를 채웠다. 9만 원씨는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거를 한다. 조직도의 직함에 handyman (잡역부)이라고 기재해서 회사 게시판에 올렸을 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거를 9만 원어치만큼 하는 일상이, 슬슬 지겹다.
뭐라도 열심히 하면 높이 올라갈 줄 알았다. 저 꼭대기 까지는 오르지 못한다 해도 차곡차곡 계단이라도 올라갈 줄 알았다.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거 하는 사람이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외국계 어디 어디 다니는 자식이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많은 일을 공들여해도,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거는 9만 원씨가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규정된다. 그래서 9만 원씨는 아무리 열심히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걸 해도 올라갈 수가 없다. '잘한다 잘한다, 우리 9만 원'이라고 후하게 평가를 줘도 회사는 9만 원씨가 잠자코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거나 해 주었으면 좋겠다. 머리 컸다고 '이건 아니고 저건 아니다' 하는 게 아니꼽다. 회사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9만 원씨다. 회사는 업무에 능숙해진 9만 원씨를 다른 부서로 보내서 일을 가르치고 또 다양한 업무를 배울 수 있게 할 생각이 없다. 애초에 그런 일은 15만 원씨가 하는 게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15만 원씨는 애초부터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거 시키는 걸 다 할 필요가 없다.
회사는 15만 원씨에게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것을 강요하지 못한다. 15만 원씨는 아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9만 원씨가 아무리 업무에 능숙해진다 해도 회사는 9만 원씨가 아쉽지는 않고 언제나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것만 시킨다. 애초부터 9만 원씨는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것만 하는 사람으로 채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나, 어느 날부터 9만 원씨가 잠자코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거를 하기만은 싫단다. 정규직이라 보낼 수도 없으니 못 들은 채 하며 전과 같이 혹은 전보다 더, 이래 저래 그냥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걸 죄다 9만 원씨에게 미룬다. 그리고 너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그래도 딱히 9만 원씨는 앙칼지게 덤비지 않는다. 회사는 9만 원씨를 너무 잘 뽑았다.
9만 원씨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높이 올라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쯤 했으면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은 모두 틀렸으며, 앞으로도 그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할 필요가 없어졌다. 잘한다는 소리도 별로 기쁘지 않다. 9만 원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챈 게 비통할 뿐이다. 나 하나를 통으로 갈아 버티든 말든, 여하튼 9만 원이다. 그러니 시키는 거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거나 딱 9만 원어치 하는 것으로 회사에 빚은 없다.
"집도 있어요!"
언제부터 사람의 가치를 규정하는 것이 집이 되었을까? 집도 없고 딱히 높이 오르지도 못했지만 9만 원씨는 단순히 집 한 채만 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주제에 뭐부터 해야 하는지는 나이 40이 넘도록 모르겠다. 아직도 모른다는 것을 보면 역시 9만 원씨가 생을 단단히 잘못 살아온 모양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돈을 벌어오는 잡역부 9만 원씨를 부캐라고 생각하기로 하자. 이야기를 짓는 9만 원씨가 본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가장 진솔하게 나와 덤덤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게 진짜가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오늘 하루가 다 가기도 전에 잡역부 9만 원씨가 하루를 내려놓는다. 부캐는 그저 회사에 빚지지 않을 만큼 일하며 돈이나 벌어오면 그만이다.
9만 원씨는 여전히 높이 올라가 보고 싶다. 손이 닿지 않는 마천루까지 올라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차곡차곡 고비를 넘기고 어찌어찌 살아왔듯이,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고 싶다.
하지만 9만 원씨가 여전히 그 방법을 모르는 게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