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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M삼min May 28. 2024

성북동 파브르

chap.1 사실은 벌써 도망가고 싶다.

 땅콩버터 향을 풍기는 살충제, 편백수로 유명한 업체의 살충제.
 지난주부터 온 집안의 창틀을 살충제로 코팅하고 바닥에 부비트렙처럼 유인 먹이통을 설치했다. 9평 반의 공간을 쪼개고 또 쪼개 놓아서 온 집안에 흩뿌리니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이미 지치고 식욕을 잃어 와인을 땄다. 뉴욕이 콘크리트 정글이라면 성북동은 아마존 정글 혹은 '애니씽 캔 킬 유' 호주 같은 거다. 나는 집이 아니라 벌레들의 서식지로 이사 온 게 틀림없다. 창틀에 부착해 둔 정사각형의 회색 플라스틱 솔이 무엇인지 몰랐다. 이것은 창틀 사이로 침입하는 벌레를 막는 장치였다. 바람과 물은 투과하게 벌레는 이 좁은 틈을 통과하지 못하게.

 -창틀에 이 정사각의 솔처럼 생긴 플라스틱 장치를 발견한다면, 달아나세요!-

 지금껏 알지 못했던 것을 또 이렇게 배운다. 역시나 이번 이사도 속은 기분이 든다.

 "이 집이 얼마나 좋은 집인데요!"

앞으로 공인중개사들이 이렇게 말한다면 따귀를 때려줘야 한다.

 "그럼 선생님이 평생 사시면 되겠네요!"

암묵적으로 우리 모두가 입을 다물었으나 하고 싶은 말이다. 공인중개사가 AI로 대체된다면 '이 집이 얼마나 좋은 집인데요' '아휴 이 동네는 다 이래요'와 같은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프로그래밍 해주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 지네를 처리했을 때, '도로 나갈까' 하는 생각도 들어 출퇴근 시간 틈틈이 부동산 어플을 뒤적거렸다. 며칠이나 살았다고 다시 이사라니 심지어 달아나는 이유가 벌레라니 자존심이 상해서 차마 실행할 수 없다. 층간 소음과 벽간 소음에 시달리지 않으며 관리가 잘 된 주택에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타운 하우스’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 타운 하우스를 검색해 보았다. 지하 1층 지상 2층, 차도 없는 뚜벅이에겐 과하다. 전세 20억, 매매 30억. 그냥 앞으로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로 스스로와 합의했다.

 지네인지 그리마인지 알 수 없는 이 다리가 백이십여 개 정도 달린 놈은 5일마다 한 번씩 총 2회 처형되었다. 많은 다리로 바닥을 빠르게 기어 쏜살같이 사라지는 장면을 떠올리면 온몸이 근지럽다. 녀석도 분명 혼자가 아닐 텐데, 이 집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거실을 기어 다니는지 알 수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장 창틀 물 구멍 보수 공사를 실시한다. 말아놓은 휴지와 스카치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창틀의 물구멍은 전 세입자가 집을 뺀 이후 부동산의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니었을까? 최소한 집을 보여줄 때 벌레는 없어야 하니 당장 할 수 있는 돈 안 드는 특단의 조치에 역시나 속은 게 아닌가 싶다.

 미래의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이 집을 보자마자 서둘러 계약금을 지불하는 나를 말리지 않았을까? 이 정도면 미래의 내가 촉을 보내고도 남았는데, 그날 뭣에 홀렸던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공인중개사가 집에 벌레가 나오고 쥐가 나오고 층간 소음과 벽간 소음이 심하다는 설명까지 해줄 의무는 없다. 아마 대한민국 공인중개사에게 해당 조건에 고지의 의무를 추가로 부여한다면 대한민국 주택 실거래는 바닥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전에 살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효과를 본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 달라고, 꿀팁은 이사 가는 길에 장문의 편지로 나눠달라고, 이제라도 애원하고 싶다.

 

 언젠가 내가 이 통수 맞은 주택을 벗어날 때 속아 넘어가 입주할 사람을 위해 앞으로의 실험 기록을 남긴다. 후세에 널리 알려 하루라도 빨리 평안에 이르기를 바란다.

 1번 살충제.
 지난주부터 창틀과 하수구 등 수차례 도포했다. 효과를 보기 전이라 아직 속단은 이르다. 편백수로 유명한 회사의 제품으로 주 살충성분은 델타메트린 2.5g (100ml 중)

효능: 바퀴벌레, 개미, 빈대, 벼룩의 구제

효능효과: 대상 해중에 직접 분무하거나 1 제곱미터당 10ml 비율로 선을 그리듯 분무한다.

특징: 모든 해충을 퇴치하며 1회 살포로 살충효과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높은 지속력을 지니고 있다.


 8개의 창문틀에 도포, 2번 지네를 처단하는데 바닥이 흥건해 미끄러질 정도로 사용, 이미 반도 안 남았다. 2번 지네가 냉장고 밑으로 기어 들어갔을 때 냉장고 밑에 도포했다. 살충제를 밟은 녀석이 튀어나와 굼뜨게 움직일 때 처단에 성공했다. 이후로 하루가 지났고 현관문 틀에 도포 후 출근하며 집을 비웠다.

 문설주에 바르다니, 출애굽도 아니고, 썅


 효과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 한다. 델타메트린의 살충효과는 현재 주문 중인 3번 살충제와 효능이 비슷할 것 같으나 도포 방식에 차이가 있으므로 효과적인 방법을 지속적으로 공유하겠다.

2번 살충제.
 먹이통에 담아 바퀴벌레를 유인하는 형태의 살충제로 가장 유명하다. 역시 일주일 가량이 지났으므로 속단은 이르기에 추이를 더 지켜보아야 한다. 바퀴는 아직 만난 적이 없지만 각종 해충에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았고, 바퀴벌레 또한 미연에 방지하고자 구매했다. 방마다 먹이통 하나 혹은 두 개를 구석과 창틀 근처에 설치했다.

주요 물질: 피프로닐

표준사용량 및 사용방법: 집안과 밖에 바퀴벌레가 많이 나오는 곳의 갈라진 틈이나 구멍, 개구의 이음새 등에 적당량 넣는다. 냉장고, 싱크대, 전기배선박스, 선반, 파이프 접속부위 등 바퀴벌레가 자주 나타나는 곳의 밑부문 혹은 뒷면에 적당량 도포한다. 소량씩 여러 곳에 사용 권고 및 바퀴가 보이지 않아도 예방을 위해 미끼를 제거하지 않을 것 또한 권고. (전기배선 박스에도 바퀴벌레가 있어?)


 아직까지 바퀴벌레는 만난 적이 없으나, 극 혐오 생물로 미연에 방지하고자 구매. 3개월 간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지네가 잡아먹어서일지, 살충 효과인지 영원히 모르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3번 살충제

 1번과 같은 델타메트린 성분의 가루약이다. 마당과 외벽을 따라 도포하면 지네 및 절지류들의 신경이 마비되어 퇴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번 주말에 엑소시스트가 되어 빙의자의 침대 주변에 소금을 뿌리듯 외벽과 현관 및 계단에 도포할 생각이다.


 지네는 구전동화나 괴담 속에서 영물로 간주되어 잡아먹거나 죽이면 후한이 따른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오늘따라 전에 없이 허리가 아프다.

지네는 허리에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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