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파브르
chap. 2 어느 지퍼든 하나 열면 다 연결되는 도이터 배낭 같은 창문
절지동물을 떠올려보자. 잘 구부러지고 납작한 체형을 보면 창문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기 안성맞춤이다. 아마 녀석에게 콩 벌레가 가득한 나의 '코리안 코티지'는 단골 맛집일 테고 맛집 주인이 바뀐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녀석은 그저 바뀐 주인이 적당히 더럽고 습한 환경을 유지해 줄 것을 바랄 것이다.
전에 살던 사람이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면 그들 또한 벌레의 침입을 막는데 고군분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틈새를 꼭 막은 두루마리 휴지, 셀로판테이프, 벌레막이 블록. 그중 어느 하나라도 성공했을까? 혹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친화적인 삶으로 회귀했을까? 시도는 좋았지만 딱히 효과를 본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꼭꼭 닫힌 창문 아래 오늘날의 내가 배를 까뒤집은 손톱만 한 바퀴벌레를 발견한 것이 아니겠는가?
창틀에 도포해 둔 살충제의 효과일까? 죽은 지 시간이 꽤 경과했는지 와스락 소리가 날만큼 야위어 껍데기와 날개만 남았다. 이 종이짝만 한 가녀린 몸통을 보니 풍지판을 본떠 한 창문에 위아래로 8개는 족히 되는 창틀 구멍을 이리저리 막아도 나는 도저히 이들의 침입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
산 것을 만나도, 죽은 녀석을 보아도 밥맛이 똑 떨어져 내다 버릴 와인병만 늘어간다. 옷이나 가방보다 농번기에 쉽게 볼 수 있는 농약살포기가 갖고 싶다. 디키즈 작업복을 입고 마틴을 신은 체 얼굴에 망이 달린 양봉모자를 쓰고 주말마다 살충제를 살포하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이 거대한 생명체들은 조만간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어, 왔냐, 우리 먼저 시작했다’ 하며 뻔뻔하게 맥주든 와인이든 지들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한 잔 걸치고 있을 것 같다.
우두머리 알파 지네는 의자 등받이에 왼손을 올리고 다리를 꼬고 앉아 위스키를 축내고, 작고 힘없는 콩 벌레는 인덕션 앞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무언가를 잔뜩 굽고 있을 것이다. 달동네 팅커벨은 거들먹거리는 지네 옆에 꼭 붙어 앉아 쓱배송은 내가 냉장고에 넣어뒀다며 잔뜩 생색을 내곤 주인보다 먼저 과일을 집어먹고 있을 것 같다.
“아, 인사해! 앞으로 자주 놀러 올 놈”
인덕션 앞의 콩벌레에게 맛이 이상하니 싱겁니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바퀴벌레가 까딱하고 더듬이를 움직인다. 이 불청객들과 저녁식사가 끝나고 콩 벌레를 마당에 데리고 나가 위로해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까 쓱배송 온 거 보니까 아이스크림 샀던데, 그거 먹어도 돼?”
붕붕거리는 달동네 팅커벨에게 버켄스탁 슬리퍼를 든 나를 말려주는 건 지네일까, 콩 벌레일까?
“야, 니들 닥치고 다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