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at my memory

Eat, My memory

나를 슬프게 하는 접시#no. 3 참치 회- 실패의 맛

by 오M삼min

참치가 싫다. 비싸서 자주 못 먹는 거니 회식 때 꼭 먹어야 한다는 동료들이나, 몇 시간을 뙤약볕에 서서 기다려서라도 특정 집의 참치를 꼭 먹어야겠다는 사람들조차 다 싫을 정도로 참치가 싫다.


참치 회에선 실패의 맛이 난다.

입속의 혀처럼 부드러워 불안하다.

부드럽게 얌전 떠는 꼴에 깜빡 속아 미각의 욕구에 충실히 입 속의 풍미를 즐기려는 찰나 희끗희끗한 힘줄을 건드려 된통 욕지기질이나 당한다.

깜짝 놀라 얼떨결에 이 배신감을 삼켜버리면 불안함이 목구멍까지 꽉 차 답답하다.

나는 참치회에서 부서진 희망의 맛을 느낀다.

망가진 희망의 맛이 목구멍을 갉는다.




나는 초밥 먹을 줄 모르던 어린이라 와사비를 다 빼서 하나도 안 맵다는 큰 고모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언니는 저렇게 잘 먹잖니 너도 하나 먹어봐-

야무지게 집어 든 젓가락 사이의 붉은 참치가 입술 앞에 놓여도 10살의 절개는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우리 가게의 감자 샐러드와 참치구이를 좋아했다. 아빠는 좋은 생선이 들어온 토요일에 꼭 가게에 데려갔다. 크고 두툼하게 썰은 참지대뱃살 초밥을 먹으라고 내줘도 나는 감자 샐러드로 배를 채우고 무시무시하게 시뻘건 참치는 먹지 않았다. 일단 생선인데 살이 피처럼 붉다니 지금 봐도 정이 안 간다. 뻐얼건 고추장에 밥은 서억서억 잘 비벼 먹으면서 말이다.

아빠는 참치를 잘 먹는 언니를 예뻐했다. 매워서 눈썹이 빨개지도록 언니는 참치를 잘 먹었고 또 좋아했다. 그에 비해 나는 초밥집 딸 치고는 입맛이 소박했다. 구운 녀석만 탐하던 나는 참치구이를 질리도록 먹은 이후엔 하얀 쌀밥과 감자 샐러드에 김치의 조합에 빠졌다. 그 조합이 마치 삼합이라도 되는 냥 켜켜이 쌓아 올려 한 수저에 가득 담아 입속에 넣고 우적우적 먹는 그 가득한 부드러움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찬은 이렇게 언제나 두 가지면 충분했다.

매주 토요일, 가게에서 네 가족이 식사를 하고 늦게까지 가게 일을 돕다가 집에 함께 돌아왔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엄마도 평일에 가게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밥솥엔 밥이 있고 냉장고엔 내가 먹을만한 냉동식품이 그득한데 나는 반찬 통을 꺼내 상을 차려먹은 기억이 잘 없다. 그렇다고 배가 고팠다거나 허기져 쓸쓸했다는 기억도 딱히 없다. 밤늦게 엄마는 참치구이와 감자 샐러드를 가져왔지만 나는 너무 졸려서 대부분 먹지 못했다.


그 이듬해, 늦은 여름이던가?

해를 등진채 체육복 바람으로 짭조름한 머리를 이고 터덜터덜 걸어오니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웬일인지 엄마가 집에 있었다. 저녁을 짓고 나를 기다리는 엄마를 오랜만에 만났다.

빈 집에 엄마 냄새가 오랜만에 가득해 따뜻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 엄마는 집에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갑작스러운 온기는 왜인지 서서히 빠져나갔다. 엄마는 누워 있었다. 저녁을 전처럼 잘 짓지 않았다. 어두운 방에 누워 몇 시간씩 잠을 잤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엔 방구들장이 푸욱 꺼져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무거운 잠을 잘 수는 없었다. 그리고 몇 주 뒤엔 아빠도 나가지 않았다. 따뜻한 기운이 다 빠진 어두운 집이 좁으면서도 스산했다. 시커멓고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를 온종일 둘러쌌다.

우리는 더 이상 참치를 먹지 않았다. 아빠는 우리를 가게에 데려가지 않았고 엄마는 참치구이를 가져다주지도 않았다. 우리는 더 이상 참치를 먹을 일도 없었다.



내가 결혼식 뷔페에 쫓아다닐 나이가 되고 나서야 사람들이 참치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어릴 때 좀 더 많이 먹어둘 걸 그랬나 하고 꽤 여러 차례에 걸쳐 후회했다. 그래도 딱히 참치를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제 일을 하며 산다. 서로 어디에서 누구와 참치를 먹는지까지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네 사람이 모이는 일이 많지 않았다. 늘 한쪽이 어딘가에 빠져 온전치 못하게 옆구리에 바람이 부는 가족이 되었다.

오늘은 둘, 셋이 모이다 겨우 넷이 된 날이다. 아빠는 아침 일찍 시장에서 참치를 사 왔다. 거대하고 불그스름한 참치 덩어리가 봉투에서 나왔다.

아빠가 참치를 썰고 엄마가 초밥을 빚었다. 얇게 저민 참치회에 와사비를 발라 엄마가 빚은 초밥에 붙였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참치 초밥을 먹었다. 다 함께 참치를 먹는 게 20여 년 만이란 걸 아무도 모르는 눈치였다. 식초와 와사비가 정량을 초과해 코가 다 찡했다. 참치 뱃살은 언니가 죄다 먹었다. 빨리 안 먹으면 몇 점 못 먹을 텐데도 역시나 두어 점 먹고 나니 참치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배부르다는 핑계를 대고 그만 먹었다. 참치초밥은 다행히 금방 동이 났다.

날이 흐려 부엌까지 싸늘한 오후가 젖어들자 저녁으로 새콤한 참치김치찌개에 밥이나 한 술 말아 뜨고 싶었다.

통조림도 어쩔 수 없는 참치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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