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평 반짜리 공간의 현관문은 좁았다. 이 공간에서 매달 54만 원을 착실히 납부해야 간신히 서울살이 깍두기에라도 끼워주는 주제니 감히 맘 편히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살이라도 찌면 안 된다는 으름장 같았다.
현관문을 열면 오른쪽에는 세면대와 샤워기를 한 번에 사용하라는 수전 하나, 변기 하나, 두루마리 휴지 세 개와 잘 접은 수건을 세 장 넣으면 꽉 차는 서랍장, 화장실이다. 현관문 왼쪽엔 한 구 짜리 인덕션과 드럼 세탁기,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냄비를 넣으면 꽉 차는 싱크대와 식품이나 그릇은 보관하려면 한참이나 모자라던 찬장, 그 옆엔 음료수 몇 개에 제철과일이라도 넣으면 꽉 차는 작은 냉장고와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고른 5개의 아이스크림을 넣으면 아무것도 보관할 수 없던 냉동고가 있는 부엌이 있었다.
냉장고 옆, 낮고 좁은 책상 위에 뚜껑이 없는 책장 겸 수납장, 그 옆에 한 칸 짜리 옷장, 내가 사는 공간의 전부였다. 4평 반의 공간에 살면서 저 옷장이 두 칸만 됐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 한짝만 달려 있을 게 아니라 양손으로 옷장 문을 열면 오른쪽 문엔 거울도 달린, 긴 옷을 수납할 수 있는 막힘없는 한짝과 왼쪽엔 두 헹거로 나뉘어 상의와 하의를 구분해서 넣을 수 있는 두 짝 짜리 옷장이었으면, 하고 그만큼 늘어났을 공간을 상상해 보았다.
집 안의 가구라 부를 수 있는 모든 수납장들은 비닐 코팅이 군데군데 벗겨진 새빨간 와인색과 누렇게 바랜 화이트의 조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 한 때 유행했던 냉장고 디자인을 추억하게 만들었다.
누렇게 바랜 벽걸이 에어컨은 전기세가 아까워 틀지 못했고, 열대야가 오면 참고 또 참다가 에어컨을 잠시 틀어 작은 공간을 얼리고 잠을 청했다.
한 겨울이 오면 5개의 호실이 한꺼번에 공유하는 한 대의 보일러로 온기를 나눠 써야 했고 실내온도를 28도까지 올리는 게 최대였으나 충분히 따뜻해지지 않았다. 도톰한 수면 잠옷을 위아래로 껴입고 이불 위에 파카를 겹쳐 덥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4평 반이라는 공간이 너무 협소했는지 벌레는 살면서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실평수 6평과 8평짜리 오피스텔 12층에 살면서 정기소독에 빠지지 않고 현관 비밀번호를 공유했을 때도, 심심찮게 보았던 바퀴벌레조차도 4평 반의 공간에는 오지 않았다.
9월 초, 불볕더위가 가시고 막 이사를 했을 땐, 창문을 열고 잠이 들면 새벽녘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조금 살 것 같았다.
짐을 풀고 이틀 뒤, 전에 살던 사람의 성적표가 배송되었다.
S 대 음대에 다니는 그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가 떠났음에도 몇 주 동안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를테면 성적이나 단골집 취향과도 같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철저히 사적인 것들이었다. 성적표에 따르면 그는 현악기를 전공하는 음대생이었고, 세탁기 고무 패킹에 끼여 있던 라이터의 상호를 보니 여대생을 밤낮으로 학교 안과 밖에서 다양하게 만나 교류하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 4평 반짜리 공간을 완벽한 내 영역으로 영위하기 위해 놈의 흔적을 천천히 지워 나갔고, 한 달쯤 후엔 여자 냄새가 나는 곳으로 공간을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섬유 유연제와 향수, 코코넛 향이 나는 샴푸와 바디 워시, 그런 것만으로도 공간주인이 누구인지 방에게 명백하게 공고할 수 있었다.
추위가 찾아오자 이제는 아마도 음대생 이전에 살았던 사람의 우편물로 추정되는 채권추심통지서가 한 달에 한 번씩 날아왔다. 그냥 두면 알아서 가져가겠지 하고 방치해 두기에 꽤 많은 양이 쌓였고 자꾸만 내가 사는 주소로 날아오는 이름만 봐도 무시무시한 서류가 달갑지 않았다. 담당자나 통지서의 주인을 찾아볼 요량으로 한 장의 봉투를 뜯어보았다.
5천만 원이 조금 넘는 아름이가 빌린 원금, 2억 원을 조금 넘긴 아름이가 갚아야 하는 돈.
꽤 여러 번 자릿수를 세어 보았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받는 사람이 내가 아닌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채권추심통지서 아랫단에는 개인회생 절차가 상세히 안내되어 있었고, 곧 담당자가 자택으로 방문할 것이라는 문구도 실려 있었다.
그렇게 아름이는 얼마동안 그 존재를 잊을만하면 재차 4평 반짜리 내 공간으로 침투했다. 통지서가 새로 갱신될 때마다 아름이가 갚아야 하는 이자와 원금은 꾸준히 불어나고 있었다.
길 건너 시장에서 세 팩에 만 원하는 딸기를 사 와 작은 냉장고에 가득 채워 부자가 된 마음을 양껏 즐기며 좋아하는 과일을 배불리 먹다가도 나는 아름이를 종종 떠올렸다.
우편함에 꽂힌 전기요금고지서를 찾다가도 문득 채권추심통지서를 보는 날이면 아름이가 갚아야 하는 돈이 또 얼마나 불어났는지 떨리는 손길로 확인했다. 아름이가 '갚아야 할 돈'은 말 그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나는 아름이가 궁금했다. 여기 살기는 했는지, 어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른 주소를 기입한 것인지, 왜 5천만 원이라는 큰돈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이 원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2억 원이 넘어가도록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마치 꾸역꾸역 함께 사는 문제 투성이 룸메이트처럼 아름이는 한동안 그 4평 반짜리 공간에 나와 함께 머무르는 것만 같았다.
두 번의 겨울을 보내고 차마 두 번의 여름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이듬해 5월, 나는 6평짜리 1.5룸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조금 넓어진 공간에서 또 마찬가지의 더위와 추위를 보냈지만, 조금 더 넓어진 부엌과 조금 더 큰 냉장고에 제철과일을 가득 쌓아두고 배불리 먹을 때면, 4평 반짜리 원룸에 홀로 두고 온 룸메이트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