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쑥날쑥, 왔다갔다
의욕이 넘치다가도 다음 순간 우스울 만큼 쉽게 의욕이 사그라진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의욕을 북돋는 소소한 방법 몇 가지를 알고는 있지만 무기력증이 괜히 무기력증이 아니다. 그런 방법을 시도해 볼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고민에 빠진다. 무기력에 저항하지 않고 끝도 없이 가라앉게 놓아둔 다음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발동할 내 생존 본능을 믿어 볼까, 아니면 너무 깊이 빠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힘을 내어 무언가를 해 볼까.
문제는 이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을 때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무언가를 하려면 엄청나게 힘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힘을 내서 한 일이 정말 큰 일도 아니고 소소하기 짝이 없는, 우스울 만큼 별 것 아닌 일이다. 실은 가만히 앉아 이런 문제를 고민하느니, 고민하는 데 이렇게 기운을 쓰느니 차라리 뭐라도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게으르고 무기력한 마음은 이건 너무 가성비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중얼거린다. 이럴 바에는 좀 더 품이 들지 않고 편하고 가벼운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이 길을 튼다. 오히려 이런 탐색이 기운을 훨씬 더 많이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지난한 고민의 과정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반복된다. 그러다 보면 기운을 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쳐 버린다. 무기력의 악순환이다.
이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악순환에서 도대체 어떻게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방법은 여전히 두 가지, 처음의 고민으로 되돌아온다. 저항하지 않고 끝도 없이 가라앉게 내버려 두고는 바닥에 이르렀을 때 아마도 남아 있을 나의 생존 본능이 나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아니면 엄청난 의지와 힘과 수고가 들겠지만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억지로라도 무엇이든 꾸역꾸역 하는 것.
다만 바닥을 치고 돌아오는 것도, 지금 무언가를 꾸역꾸역 하는 일도 결국 지금 이 순간을 모면할 뿐이다. 그다음에는 힘듦을 몇 번이고 다시 고민하고 참아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뒤따른다. 아, 정말 쉽지 않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무기력에서 조금 벗어나 오늘은 좀 괜찮은가 싶은 날이 있다가도, 바로 또다시 한도 끝도 없이 몸과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 뒤따른다. 왜인지, 그런 날은 항상 내가 방심하고 있는 순간에 찾아온다. 도무지 어디까지 온 건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시간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듯 보인다. 나는 그저 포기하지 않고, 매일같이 찾아오는 지긋지긋한 고민을 그만두지 않고, 어쨌든 계속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성비가 맞지 않더라도,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어떤 곳에도 가닿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무언가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으려 애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아무도 없는 허공을 상대로 나와 씨름을 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아무런 전조도 없이, 고민 없이도 눈을 뜰 수 있는 아침이 찾아온다. 이제야, 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 선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 잠겨 있던 진흙탕에서 오랜만에 벗어나 맨땅을 밟은 나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오늘이, 그저 조금 괜찮고 나쁘지 않은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 날인지 안다. 온 존재를 내건 듯이 애써 기운을 끌어내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을 별생각 없이 당연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 지긋지긋하게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기운과 시간과 노고의 손익 계산 없이 그저 내 앞의 순간을 온전하게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