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그리고 한 번쯤 해 보고 싶었던 감사의 말

by 와리

<안녕, 무기력>은 하나의 주제로 짧은 글을 여러 편으로 연재하는 브런치북이라는 형태로 완성한 첫 번째 글이다.


무기력과 작별한 후에도 내 안에 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자꾸만 꿈틀거렸다. 누군가에게(익명의 다수에게) 말하고 싶었고 그 당시 내 심정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었고 나도 이해 못 했던 나를 어떻게든 납득하고 이해하고 싶었다.

말주변이 없고 별다른 표현 능력이 없는 나에게 글쓰기는 유일하고 소중한 수단이었다.


한번 물꼬를 틀어 놓으니 그동안 내 마음에 욱여넣듯 구겨져 있던 말들이 물밀듯이 솟아 나왔다. 그중에는 나조차도 미처 몰랐던 마음들도 있었다.

늦게나마 보내는 연민과 위로였다. 그 시절의 내가 들었다 한들 좀처럼 믿지 못했겠지만.


무기력을 이겨냈다기보다는 지나쳐 왔다. 무기력은 어쩌다 와서 어쩌다 떠난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오고 감 뒤에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의 총합이 무기력과의 작별이라 다행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들을 한꺼번에 묶어 과업을 끝낸 자의 홀가분함으로 가볍게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 하나하나의 무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다. 이 글을 쓴 이유도 그래서다.


누나가 우울하건 말건 레이저 눈빛을 쏘면서 산책을 재촉하던, 언제 어디서든 꼬리를 높이 들고 총총하며 걷던 우리 개 (내 생애에서 가장 멋진 개)와,

재촉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아주 작은 발전에도 호들갑스럽게 응원하며 나를 믿으며 끝의 끝까지 기다려 준 나무와

한점 티끌 없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릴 줄 알아 그 기쁨을 요정 가루처럼 온통 주위에 흩뿌리던 우리집 어린이와

산책할 때마다 나를 반겨주던 수평선과

온몸의 세포를 씻어주는 듯한 바람과

공기 중에 떠도는 미묘한 꽃향기와

달콤하고 시원한 사과의 맛과

매트에 떨어지는 땀방울과

세찬 바람에 울리는 풍경 소리와

먹구름에 물들던 하늘과 몰려오던 비 냄새와

눈빛과 말투로 전해지던 따스하고 포근한 여러 마음씨들에게.

바닥의 바닥에서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몹시 애썼던 나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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