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혁신의 레시피 - 2. 실패박물관을 만든 기업들
스웨덴 헬싱보리에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박물관이 있다. '실패박물관(Museum of Failure)'이다. 코카콜라의 투명 콜라, 구글의 구글 글래스, 애플의 뉴턴 등 유명 기업들의 화려한 실패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혁신에는 실패가 필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조직은 혁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은 실패를 숨기고, 지우고, 부끄러워한다. 실패한 프로젝트는 흑역사가 되고, 실패를 경험한 직원들은 조용히 다른 부서로 이동한다. 이런 조직 문화가 지속되는 한 진정한 혁신은 불가능하다.
반면 성공하는 기업들은 다르다. 이들은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고, 실패에서 배우며, 실패를 통해 더 큰 성공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일부 기업들은 실제로 '실패박물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실패를 숨기는 조직 vs 실패를 전시하는 조직
대부분의 조직에서 실패는 은밀한 일이다. 실패한 프로젝트의 자료는 조용히 폐기되고, 관련자들은 "그 일은 언급하지 말자"는 암묵적 합의 하에 침묵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과거의 실패 경험은 공유되지 않는다.
이런 조직에서는 실패의 학습 효과가 0에 가깝다. 실패는 단순히 비용이 되고, 시간 낭비가 되며, 개인의 평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정적 요소가 된다. 결국 조직원들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도전을 피하게 되고, 안전한 길만 선택하게 된다.
반면 실패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조직들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얻는다. 페이팔의 창립자이자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는 이렇게 말했다. "실패는 여기서 하나의 옵션이다. 만약 실패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충분히 혁신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존의 "실패를 축하하는 문화"
제프 베이조스가 이끌던 시절 아마존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었다. 매년 열리는 '실패 축제'였다. 이 행사에서는 그 해 가장 창의적으로 실패한 프로젝트들을 선정하고, 담당자들에게 상을 준다. 상금은 성공한 프로젝트 담당자들과 똑같다.
2014년 아마존 파이어폰은 대표적인 실패작이었다. 출시 1년 만에 1억 7천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며 단종되었다. 하지만 아마존은 이 실패를 숨기지 않았다. 대신 '실패 리포트'를 작성해 전 직원과 공유했다.
"우리는 파이어폰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3D 인터페이스에 대한 고객의 실제 반응은 어땠나?"
"스마트폰 시장 진입 시 간과한 요소들은 무엇인가?"
"이 경험을 다른 제품 개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놀랍게도 파이어폰의 실패 경험은 아마존 에코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파이어폰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음성인식 기술과 인공지능 경험이 알렉사 개발의 핵심 자산이 된 것이다.
베이조스는 아마존 주주서한에서 이렇게 썼다. "실패와 발명은 쌍둥이다. 발명하려면 실험해야 하고, 실험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실험이 아니다."
프록터앤드갬블의 "실패 이력서"
세계적인 생활용품 기업 P&G에는 '실패 이력서(Failure CV)'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승진 후보자를 검토할 때 성공 경험만큼 실패 경험도 중요하게 평가한다. 실패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오히려 "충분히 도전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P&G의 전 CEO인 A.G. 래플리는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과거 실패 프로젝트들을 재검토하는 것이었다. 그는 실패한 제품들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패 원인을 체계화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연결과 개발(Connect + Develop)' 전략이었다.
이 전략의 핵심은 내부 연구개발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P&G는 과거 실패 경험을 통해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새로운 혁신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스위퍼, 올레이 리제너리스트, 프링글스 프린트 등 많은 히트 상품들이 이 전략을 통해 탄생했다. 래플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실패들이 오늘의 성공을 만들었다."
실패의 DNA를 해독하는 기업들
혁신적인 기업들은 실패를 단순히 경험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실패를 해부하고, 분석하고, 패턴을 찾아낸다. 마치 DNA를 해독하듯 실패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정보를 다음 도전에 활용한다.
인텔에는 '포스트모템(Post-mortem)' 문화가 있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관련자들이 모여 철저히 부검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는 절대 개인을 탓하지 않는다. 대신 시스템, 프로세스,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한다.
"어떤 가정이 틀렸나?"
"어떤 정보가 부족했나?"
"어떤 프로세스에서 문제가 발생했나?"
"같은 실수를 방지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나?"
이런 질문들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는 '실패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이 데이터베이스를 참조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한다.
자가진단: 당신의 조직은 실패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다음 질문들을 통해 조직의 실패 문화를 점검해보자.
실패에 대한 반응
□ 실패하면 책임자를 찾는다
□ 실패하면 원인을 분석한다
□ 실패하면 학습 포인트를 찾는다
□ 실패하면 시스템을 개선한다
실패 정보의 활용
□ 실패한 프로젝트는 조용히 묻힌다
□ "그 일은 언급하지 말자"는 분위기다
□ 실패 경험을 문서화한다
□ 실패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도전에 대한 태도
□ 실패할 가능성이 있으면 시도하지 않는다
□ 안전한 것만 선택한다
□ 계산된 위험은 감수한다
□ 실패하더라도 도전을 격려한다
실패 경험자에 대한 대우
□ 실패 경험은 경력에 불리하다
□ 실패한 사람은 조용히 다른 부서로 간다
□ 실패 경험도 중요한 자산으로 본다
□ 실패 경험이 많은 사람을 더 신뢰한다
점수:
각 영역에서 아래쪽 답변이 많을수록 건강한 실패 문화를 가진 조직이다.
타타그룹의 "가장 용감한 실패상"
인도의 거대 기업집단 타타그룹에는 매년 시상하는 독특한 상이 있다. '가장 용감한 실패상(Dare to Try Award)'이다. 이 상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도전했지만 실패한 팀에게 주어진다. 상금은 성공한 팀과 동일하다.
2008년 타타그룹이 출시한 '나노(Nano)'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2,500달러에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결국 시장에서 실패했다. 안전성 문제, 브랜드 이미지 문제 등으로 판매가 부진했고, 결국 생산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타타그룹은 나노 프로젝트 팀에게 '가장 용감한 실패상'을 수여했다. 그리고 이 실패에서 얻은 교훈들을 정리해 발표했다.
"저비용 제조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배웠다"
"신흥시장 고객의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파트너십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브랜드 포지셔닝의 미묘함을 경험했다"
이런 학습들은 타타그룹의 다른 프로젝트들에 적용되었고, 실제로 많은 성공 사례들을 만들어냈다.
타타그룹의 창업주 JRD 타타의 말이 이런 문화를 잘 보여준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계단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조직은 결코 위대해질 수 없다."
엑스(X)의 "실패 보너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산하 문샷 팩토리 '엑스(X)'에는 더욱 파격적인 제도가 있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오히려 보너스를 준다. '실패 보너스'다.
엑스는 10배 이상의 개선을 목표로 하는 극단적 혁신 프로젝트들을 진행한다. 자율주행차 웨이모, 인터넷 풍선 룬, 배송 드론 윙 등이 모두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성공하는 프로젝트보다 실패하는 프로젝트가 훨씬 많다.
엑스의 CEO 아스트로 텔러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실패를 빨리 발견하고 빨리 중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패할 프로젝트에 오랫동안 매달리는 것이 진짜 실패다."
예를 들어, 엑스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 포그혼(Project Foghorn)'은 해수를 연료로 바꾸는 기술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했지만, 실제 개발 과정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팀은 즉시 프로젝트를 중단했고, 빠른 판단에 대한 보너스를 받았다.
엑스의 실패 보너스 제도는 두 가지 효과를 만든다. 첫째, 팀들이 더 과감한 도전을 하게 된다. 실패해도 처벌받지 않으니까. 둘째, 실패를 빨리 인정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게 된다. 실패에 매달리지 않으니까.
실패박물관을 만드는 5단계 실천법
조직에 건강한 실패 문화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1단계: 실패 정의하기
무엇이 실패인지 명확히 정의한다. 도전하지 않는 것도 실패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시도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을 만든다.
2단계: 실패 기록하기
실패한 프로젝트들을 체계적으로 기록한다. 실패 원인, 과정, 결과, 교훈을 정리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든다.
3단계: 실패 공유하기
실패 경험을 공개적으로 공유하는 시간을 만든다. 월례회의나 워크숍에서 실패 사례 발표 시간을 갖는다.
4단계: 실패 분석하기
실패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한다. 프로세스, 의사결정 과정, 정보 공유 방식 등을 분석한다.
5단계: 실패 보상하기
의미 있는 실패에 대해서는 보상을 한다. 용감한 도전, 빠른 학습, 솔직한 공유에 대해 인정하고 격려한다.
실패는 혁신의 자양분이다
실패를 숨기는 조직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하지만 실패를 공유하는 조직은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 실패박물관을 만든 기업들의 공통점은 실패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문제가 아닌 기회로,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본다는 것이다.
혁신은 성공의 결과물이 아니다. 혁신은 실패의 결과물이다. 수많은 실패를 거쳐 나온 하나의 성공이 혁신을 만든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조직에서는 진정한 혁신이 나올 수 없다.
당신의 조직에도 실패박물관을 만들어보자. 지금까지 숨겨왔던 실패들을 꺼내서 전시하고, 그 실패들로부터 배운 교훈들을 나누자. 그러면 실패는 더 이상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실패박물관이 가득한 조직은 성공박물관도 가득하다. 왜냐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만이 진정한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