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메모 속의 당신

당신의 이야기 #2

by 한이아

그냥 흘려보내는 순간이 아깝다고 했다. 그래서 메모 어플을 찾았다. 각자의 장점을 자랑하는 어플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배경화면에서 만날 수 있는 위젯 기능이 필수인 앱이 필요했다. 그것은 오로지 당신과의 순간을 기록하고 만나기 위함이었다.


조금씩 메모엔 당신의 순간이 기록되었다. 가을 산책을 나가서 한껏 자연을 즐기고 왔던 순간, 같이 와인을 마시며 입술이 물들었던 순간 그리고 나누었던 여러 영화와 많은 대화의 순간. 나는 당신과 떨어져 있을 때도 핸드폰을 보며 항상 함께라며 즐거워했다.


당신이 강조했던 다방면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기록되었다. 평소에 그리 관심 있지 않았던 시사나 정치, 경제에 관한 어려운 이야기들 그리고 사회 과학적인 측면까지. 기록의 힘인지 당신과의 대화를 위한 노력의 힘인지 나는 점점 얕고 넓은 지식을 흡수했고 곧잘 그런류의 농담에도 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당신이 늘 고마웠다.


나도 당신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서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언제나 우위에 있는 건 당신이었기에 그 노력은 허탈함으로 끝나거나 절벽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계속 노력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즈음 당신은 외부로부터 좋은 영향을 이미 받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외부였다.


하루에 몇 번이고 기록되던 메모가 점점 줄기 시작하더니 한 줄이면 많은 것이었고 그중의 대부분은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나 눈물표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억지로 써넣은 느낌표도 간혹 보였지만 그건 정말 억지로 써넣은 티가 가득했다. 메모에는 부정적인 글들이 차올랐고 모든 감정에 무감각해진 내가 있었다. 그래서 당신에게로의 노력을 그만두었다. 조금 지나서 위안의 글들이 차올랐다.


당신을 마주친 것을 후회했다가 바보 같이 굴었던 나를 후회했고 그때의 당신이 지금은 없음에 슬퍼했다가 그때의 내가 지금은 없음에 슬퍼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나지 않았다. 당신의 순간도 당신의 미움도. 자연스레 메모에는 바쁜 일상들이 자리를 차지했고 나만의 순간으로 가득 채워졌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메모 어플을 이용한다. 이제는 다시 감정의 순간들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문제들을 남기기도 하고 순간 영감이 떠오르면 기록하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어플로 자리매김했다.


다시는 당신을 만나러 가지 않겠다는 메모가 당신과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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