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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아 Dec 22. 2021

안약

한 권을 채우자

며칠간 충혈 상태였던 눈이었다. 괜찮아지겠지 인공눈물로 버티고 있다가 실핏줄이 터지고서야 병원을 갔다. 작년 요맘때쯤 다래끼로 찾았던 병원이었다. 선생님은 그때도 지금도 자상한 아빠 모드로 "피로가 누적되면 그럴 수 있어요. 몸에 안 좋은 거 하지 말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해요."라고 똑같이 말씀하셨고 나는 시뻘게진 눈으로 그저 웃어 보였다.


아이는 넘어졌을 때 아파서 우는 게 아니라 피를 봐서 운다고 하던데. 연신 피를 닦아냈던 회사 쓰레기통에 버려진 휴지가 생각났다. 군데군데 점박이처럼 피를 묻히고 버려진 휴지는 피를 보며 울었을까.


너무 오랜만인 약국이 어색했다. 약국에서 불러주는 내 이름도 어색했다. 다시 한번 나에게 '너는 약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다래끼 때문에 왔을 때와 똑같은 안약 2종을 쥐여줬다. "하나는 흔들어서 넣어야 하고요. 두 개 5분 간격으로 넣으시고 아침 점심 저녁 자기 전 이렇게 4번 넣으시면 돼요." 진료 대기시간이 길었어서 약국을 나올 때쯤엔 이미 퇴근시간이 가까워 있었고 이참에 한동안 못 갔던 단골 카페를 가자며 발 방향을 완전 반대로 돌렸다.


"오, 이아님 웬일이에요. 너무 오랜만이에요." 이곳에서 불리는 내 이름은 어색하지 않았다. 사장님을 만나자 눈이 간지러웠다. 그리고 따듯한 드립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대추차 같은 상큼달달묵직한 원두가 있다며 한잔을 내려주셨다. 커피가 아주 취향이어서 또 한 번 눈이 간지러웠다.


눈이 피로하니 모든 것이 피로하다는 내게 사장님은 맛나다며 깨 과자를 하나 주셨다. 깨강정 같은 자태로 얇은 비스킷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입 베자 뚜둑하고 설탕층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달았다. "이거.. 너무 달아요. 아, 앞에 캔디라고 써있네." "그럼요. 깨가 달죠. 아니, 잠깐만. 깨가 달았다. 깨달았다?" "세상에."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웃을 때 눈이 없어질 듯 감기는데 왼쪽 눈이 부어 다 감기지 못했다.


부어서 다 감기지 못한 눈에 개그를 성공시켜 뿌듯해하는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까지 웃을 때는 눈이 감겨버려 상대방의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웃는 동안 너는 저런 표정을 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눈에 피 좀 났다고 해서 울지 않는 어른이 된 기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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