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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아 Jan 12. 2022

맥주 한 권

한 권을 채우자

단골 카페에는 다른 데서 보기 힘든 수제 병맥주가 여럿 있다. 낮이 여유로울 때나 저녁이 한가할 때 카페 구석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보고 처음 보는 라벨이 붙어있는 병을 하나 꺼내본다. "사장님 이거 뚜껑만 따주세요." "잔은 안 필요해요?" "에이, 뭐하러 설거지를 만들어요. 그냥 병째로 마실게요." 바 테이블에 앉아 꼰 다리 한쪽을 흔들흔들하며 바깥을 본다. 중심부를 벗어났지만 그래도 홍대라 많은 사람이 다닌다. 날이 추워 꼭 붙어 다니며 경의선 산책로로 향하는 커플도 있고 천천히 자전거를 타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는 이도 있고. 이곳을 단골로 정한 이유는 고급진 드립 커피의 맛과 사장님의 입담 때문도 있지만 역시 바 테이블의 비중이 컸다.


바 테이블에 앉은 손님은 가게의 마스터를 매개체로 하여 그날 한정 친구가 된다. 사장님과 손님의 대화에 내가 자연스럽게 껴도 되고 나와 사장님의 대화에도 다른 이가 껴도 된다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바깥을 구경하며 맥주를 홀짝이면 하나 둘 손님이 들어와 자리를 채운다. 노트북을 들고 와 작업하는 프리랜서도 있고 오랜만에 친구와 놀러 나온 대학생도 있고 내일 출근이 싫은 직장인도 있다. 처음 온 손님도 백 년 단골처럼 따숩게 맞아주는 사장님의 편안한 입담에 술술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일자로 앉아있는 우리들은 고개를 바 안쪽으로 밀기도 하고 의자를 뒤로 젖히기도 하며 그 이야기에 공감과 토론을 주고받는다. 중간중간 마시고 있는 음료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이건 무슨 술이에요?" "아, 여기 신기한 맥주 많이 팔아요. 다른데선 잘 안 팔더라고요." "신기하다. 한 모금 마셔봐도 돼요?" "그럼요. 새걸로 주문하세요."


두세 시간을 떠들었더니 한 병을 다 마셔 집에 가야 할 만큼의 취기가 올랐다. 맥주값으로 만원이 나왔다. 책 한 권 정도의 값이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마주쳤다는 것만으로 여러 인생 이야기를 나누었던 나이모를 여러 명의 친구와 인사를 나누었다.  


다양한 너의 얘기는 언제나 흥미를 일으킨다. 우리의 모습은 모두 다르고 삶의 모습 또한 다르니 얘기를 듣고 있으면 꼭 너가 쓴 에세이를 한 권 읽는 느낌이다. 작가와의 북 토크에 참가한 독자가 된 행복한 기분. 종종 새로운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러 단골 카페에 맥주 한 권을 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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