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이아 Dec 27. 2021

욕심

한 권을 채우자

어차피 한 캔도 다 못 마시고 흐에에 거리며 잠들 거면서 뭐하러 4캔 만원을 꾸역꾸역 사 오는 걸까. 아니 애초에 알콜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면서 뭐하러 술을 사는 걸까. "한 잔도 제대로 못 마시는 게 술꾼 코스프레하지 마라." 집 앞의 단골 맥주집 사장님은 나를 볼 때마다 혀를 찬다. "술 가성비 좋아서 부럽다야." 저건 비꼬는 말이다. "부럽죠? 부럽죠? 부러우면 술 못 마시는 몸으로 다시 태어나세욧." 이것도 비꼬는 말이다. 


"그럼 너는 술을 왜 마시는 거야? 스트레스받아서? 아님 즐거운 일 있어서?" "어.. 욕심이요?"


술 잘 마시는 사람이 부러웠다. 나도 퇴근 후에 지쳐 돌아온 집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안식을 찾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고 동료들과 밤새 취할 때까지 마시며 싸우고 엉겨 붙고 난리 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바람은 첫 회사에서 동료가 데려간 술집에서 무너졌다. 생각보다 맛있다며 레몬소주를 한 잔 들이켜곤 고이 집에 가서 잠들었다. 괴로운 인생사 털기? 동료와 친목? 그런 거 없었다. 취했다 - 잠 온다 - 눕고 싶다 - 집 가자의 충실한 취침 본능 프로세스를 따라 동료가 무슨 말을 하든 말든 시뻘건 얼굴로 벌떡 일어나서 집에 갔다. 술을 안 마신 버릇이라며 마시다 보면 괜찮아진다고 매일 마셔봐도 집에 한 바구니 사놓고 마셔봐도 숙취해소제를 마시고 마셔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마실 수 있는 양도 전혀 늘지 않았고 집에 가서 잘 잤고 모든 걸 다 기억했다.


"부럽다. 술 잘 못 마시면 좋지 않아?" 모든 희로애락을 술과 함께하는(그것도 항상 궤짝으로) H가 물었다.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건데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으면 기분이 더 더럽다고. "그럼 나랑 주량 바꿀래?" "아니." "왜. 부럽다며." "하지만 이 술도 마시고 싶고 저 술도 마시고 싶은걸?" "저주할 거야. 더더욱 안 취하도록." 


어떤 주종을 마시든 집에 가고 싶은 충동이 드는 양은 한잔 정도로 비등비등했기에 이왕 못 마실 거, 맛있는 술을 마시자 싶었다. 그때 몇몇 지금도 다니고 있는 단골 바가 생겼지 싶다. 누가 '술 어디서 드세요.'라고 물었을 때 '아, 단골 바가 있어요.'라고 하면 얼마나 멋진가! 후후후. 마치 술고래가 된 것 같은 이 어른의 멋짐을 보아라! 어차피 바에서 마시면 많이 마실 일이 없기 때문에 내 주량도 들키지 않고 스무스하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바랬던 고주망태의 으쌰으쌰 화이팅 친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차분하니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는 그 느낌에 욕심이 난다. 혼자 침대 옆 책상에 앉아 홀짝이는 술도 좋지만 적당히 흐물거리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욕심난다. 그래서 너가 어떤 술을 마시든 꼭 한잔은 같이 하려고 한다. 한 잔을 오래 나눠마셔 얘기를 나눌 시간이 길어지면 더 좋고.



작가의 이전글 잇 더 피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