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내가 최선이면 좋겠다.

서로에게 서로가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바라는 집사의 바람을 가득 담아서,

by 타이타

19. 걱정은 일단 뒤로! 이름부터 지어줄까?



다섯 마리의 집사를, 그것도 내가, 우리 가족이 책임을 지는 게 맞을까?


혹시 모를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아직은 우리의 존재를 완벽하게 인식하지 못한 새끼들을 분양하는 게 어떨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우리 가족의 사이에서 나오던 타이밍에 맞춰, 정말 기가 막히게 세 꼬물이들이 눈을 완벽하게 뜨고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채 가누지 못하는 고개를 까딱거리면서도 제 앞의 커다란 존재들을 두려움 없이 맑은 눈으로 온전히 담아내는 세 꼬물이들의 모습에 어쩐지 코가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대문자 T인 인간들이지만, 유독 동물들 앞에서는 극한의 F가 되어버리다 보니, 그저 눈을 맞춰오는 작은 행동에도 눈물이 핑 돌고 마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걷잡을 수 없이 정이 들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아 뭐 벌써부터 걱정을 해! 일단 젖 떼고 보자, 그다음에 생각하자고.


우리 셋 중에서 유일하게 p인 남동생이 걱정에 걱정을 싸매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곤 답답한 마음에 내뱉은 말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꼬물이들은 이제 겨우 눈만 뜬 상태였고, 여전히 지바의 손길과 우리의 울타리가 필요한 연약하디 연약한 존재들이었으니까. 보통 2-3개월 정도 된 강아지들이 안정적인 분양의 대상이기도 하고, 우리가 여태껏 보았던 강아지들도 다 그맘때쯤의 연령이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남동생의 말을 끝으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요 꼬물이들이 건강하게 쑥쑥 클 수 있도록 좀 더 든든한 울타리의 역할을 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속으로 남몰래 설정한 2개월이라는 시간의 타이머를 설정한 채로.





눈을 뜨기 시작한 뒤로 이 세 꼬물이들은 일사천리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기 시작했다. 보이는 게 많아져서인지 덩달아 호기심도 쑥쑥 자라났고, 그에 따라 행동반경도 점차 넓어져서 책상 아래 만들어 두었던 작은 산실이 이제는 요 천방지축 꼬물이들에게는 너무도 작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점점 이불로 만든 벽을 넘어오려고 낑낑거리는 꼬물이들의 모습에 새로 빨고 깨끗하게 햇볕 소독까지 마친 이불들을 켜켜이 책상 밖으로 겹쳐 깔고 난방을 켜두었다. 꼬물이들에게 1m 남짓의 새로운 세상이 추가로 연결된 셈이었다. 서로 앞다투어 끼잉 끼잉 하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짝씩 겁도 없이 내딛는 꼬물이들의 모습에 입가에 절로 호선이 그려졌다. 완전히 힘이 들어가지 않아 30cm를 움직여도 금세 지쳐서 멈춰서는 모습, 제법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지 방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토니를 바라보는 모습, 지바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꼬물이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 가족에게 웃음꽃을 피워냈다. 정말이지 요 작은 생명체들이 뭐라고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세 꼬물이들이 눈을 뜨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리 가족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름을 지어주기 위한 작명 대회를 또다시 개최하기 시작했다. 거창하게 '대회'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그저 넷이서 모여 앉아 서로 생각했던 이름들을 나열하는 일명 '누가 누가 많이 말하나' 대회인 셈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렇겠지-라는 생각으로 나름 하루의 고민 시간까지 주었던 4회 이름 짓기 대회는 생각보다 무척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제3회까지 개최된 우리 가족배 이름 짓기 대회의 3관왕이었던 나에게
몰래 떠넘기기로 엄마와 동생들이 입을 맞춰버린 탓이었다.


너무도 당당하게 눈을 빛내며 내가 지어온 이름을 어서 말해보라는 엄마와 동생들의 눈빛에 부담을 느낀 나는 손안에 메모지를 꾹 구겨 잡곤 원망 어린 목소리를 토해내며 따져 물었다. 이러는 법이 어딨 냐고- 말이다.

킥킥 거리며 웃음을 입에 머금은 엄마는 "금메달도 3관왕이면 당연히 기대 만점이지 않겠니?"라는 말과 함께 나를 치켜세웠고, 또 금세 그 말에 동해버린 나는 구겨진 메모지를 펴곤 목소리를 다듬고 첫째의 이름부터 발표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음... 일단 하얗잖아? 또 눈이 크고 팔다리가 기니까 겨울왕국 '엘사'랑 키 크고 다리도 긴 뱀파이어 다이어리 여주인공인 '엘레나' 합쳐서 엘리 어때?"


주절거리는 설명과 함께 준비한 사진을 함께 보여주자, 호오오-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주억거린 셋은 어서 둘째 이름도 말해 보라는 눈빛을 보냈고, 생각보다 괜찮은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연달아서 둘째와 셋째의 이름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째는, 골격도 좀 있고 눈이 색깔이 다양하게 섞여서 예쁘니까 엘리랑 맞춰서 뱀파이어 다이어리의 '데이먼'이라는 남자 주인공 본명을 따서 이안 어때?"


"마지막으로 셋째는, 제일 작기는 한데 다부지고 힘도 좀 있는 것 같으니까 어벤저스의 '블랙 위도우' 였던 스칼렛 요한슨에서 이름을 따봤는데, 이게 이름이 두 글자인 게 부르기 좋을 것 같아서...! 그 필모 중에 있는 '루시' 영화 제목 그대로 가져와서 루시 어때?"


셋째의 이름에서 고민이 길어졌던 터라, 제법 길게 변명처럼 늘어진 설명을 가만히 듣던 엄마와 동생들은 제법 긴 정적과 함께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마치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세 명의 눈치를 보며 힐끔거리는 나를 본 여동생의 입에서 풉- 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엄마와 남동생도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 진짜 그만 웃으라니까!! 좋으면 좋다고 말을 먼저 해주면 좋잖아, 참나!!"



생각보다 꽤 많은 고민을 했으면서 별로야? 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내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는 여동생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거린 엄마와 남동생도 이하동문이었다는 말과 함께 동의를 표해왔다. 생각보다 이름도 입에 찰떡같이 붙고 외우기도 쉬운데, 무엇보다 요 꼬물이들의 특징에 꼭 맞아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극찬과 함께 나는 다시 한번 작명대회의 단독 후보이자 단독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라는 가벼운 생각과 함께 마지막 작명 대회가 막을 내리었다.


그렇게 내도록 세 꼬물이라고 불리던 요 아가들의 이름이 지어지면서, 한창 젖을 먹이는 중인 지바의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간 우리 가족은 세 꼬물이를 하나하나 응시하며 이름을 찬찬히 소리 내어 불러보기 시작했다.


"엘리야, 네가 첫째로 길을 잘 열고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이안아, 비록 애간장이 다 녹을 뻔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숨을 내쉬어줘서 너무 고마워."

"루시야, 성질 급한 언니 오빠가 먼저 나가게 양보하고 마지막에 선물처럼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지바야, 토니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선물처럼 요 작은 생명들을 안겨줘서 고마워."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토니와 지바가 헤헤 거리며 방실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 이름이 지어진 줄은 꿈에도 모를 작은 꼬물이 셋의 챱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포근한 겨울밤이 깊어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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