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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바다와평화 Nov 13. 2024

강릉일기 둘, 중의 넷

우중(雨中)쉼표_2024.09.11




우리 동네엔 없던




   안목해변을 떠나기 전, 수미상관으로 다시 92914의 Okinawa를 듣고 나서 양산을 탁-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목해변에게도 다정한 인사를 건네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 꼭, 다시 만나!‘



   ‘안목’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약 20분 정도 가니 숙소 근처에 다다랐다.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비는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양산은 이제 우산이 되어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일출을 보려고 새벽 4시부터 움직였던 터라, 쌓였을 피로를 풀기 위해 숙소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넷플릭스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더 봤다. 한참 몰입해서 해방클럽에 나도 가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잠시 정지버튼을 눌러두고 회색 커튼을 젖혔다. 제법 굵어진 빗줄기와 어두워진 하늘 아래로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나의 계획은, 새하얀 슬랙스에 하늘색 반팔 블라우스를 입고 저녁으로 ‘버드나무 브루어리’에 가서 기깔나는 수제버거에 수제맥주를 곁들이며 분위기를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폭신한 하얀 이불을 덮고 있자니, 다시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갈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아이보리색 반팔니트에 진청바지를 꺼내입고 선택지를 수정했다.






맥스파이시 상하이버거 세트(왼), 골든 모짜렐라 치즈스틱(오)_출처:맥도날드 홈페이지




    그 대신 선택한 것은 바로 ‘맥도날드’였다. 여행 와서 굳이 굳이 프랜차이즈 햄버거 매장을 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가 사는 동네 가까운 곳엔 맥도날드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을 드리겠다.

    어렸을 땐 맥도날드 매장이 있었는데 사라진 지가 꽤 오래였다. 맥도날드 특유의 버거맛과 짜디짠 얇고 바삭한 감자튀김을 입에 넣고 싶었다. 그래서 월화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매장으로 갔다.


   때마침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우린 저녁...게장 먹었어. 넌 뭐 먹냐?“

  “동네에서 보기 드문 바로바로 맥도날드! 비도 오고...멀리 나가기도 애매하기도 하고...“

   “엉...비 많이 온다던데...비 사이로 다녀.“


   '비 사이로 막가‘라는 어구를 생각하며 피식-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입술 사이로, 짭조름한 감자튀김 하나를 집어넣었다. 건강하지 않은 맛이겠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참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준다. 그래, 그거면 된다.






출처 : FreeImages




   햄버거와 비 오는 밤거리를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사진첩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는 것 하나, 그리고 우산을 쓴 손 말고 남은 손 하나로 카메라를 들 수 있음에도 떨어뜨릴까 봐 들지 않는 ‘불안함‘에 그날의 저녁을 기록하지 않았단 것이다.


   생각해 보면, 동네에 없는 햄버거 매장에서 좋아하는 메뉴를 먹는 것은 참 소중한 일인데도 말이다. 그 메뉴가 무엇이든. 그리고 비 오는 날의 강릉 시내 거리를 마주할 날이 숱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풍경이 아쉽지만, 눈을 감고 그때의 햄버거의 맛과 향, 도로에 묻어나던 비의 향기를 떠올리려 애를 써본다. 후각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과학자의 말이 떠오를 때, 멈추었다.


   짭짤한 감자튀김과 쏟아지던 빗소리. 음- 음- 음? 음!






잘, 자요 : )








   숙소로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 폭신한 침대 위로 몸을 맡겼다. 그러다 문득 팔이 간지러워서 살살살 긁다가 내려다보았는데 아차차...! 성실하게도 양산을 피해 뚫고 들어온 햇빛에 가득 타버린 팔이 붉게 변해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갑작스럽게 강한 햇빛에 노출되면 약한 피부가 화상을 입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난생처음 입어본 피부 화상에 놀람보단 이상한 신기함이 들었지만, 이내 치덕치덕 보습크림을 발라주었다.


   








   목과 팔에 수분공급을 잔뜩 해주고 나서 불을 끄고 TV 화면에는 유튜브 ‘뮤직메이트‘의 음악 하나를 틀어 두었다. 예전부터 구독해 왔는데 하루 끝에 안온함이나 잔잔한 위로를 받고 싶을 때면 뮤직메이트를 찾곤 한다.


   잔잔한 선율을 들으며 뻐근한 전신을 위해 스트레칭을 했다. 골반부터 허리, 옆구리, 흉부, 어깨 그리고 하루종일 걷느라 수고한 나의 발과 다리근육들까지 천천히. 스트레칭을 조금이라도 하고서 다음날 일어나면 근육의 뭉침이 덜한 점이 좋다.









   완전히 소등을 하기 전, 감성 가득 묻어나는 키 큰 스탠드를 딸칵- 켜두었다. 그 모습이 마치 ‘픽사(Pixar)' 영화를 볼 때면 인트로 부분에 시그니처 스탠드 캐릭터 같았다. 고개를 돌려 스탠드가 비추는 암막커튼을 바라보다 다시 천장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후 뱉으며 몸을 일으켜 스탠드도 끈다.


   안온한 밤을 위해 나의 생각들을 잠시 가져가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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