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강릉일기 08화

강릉일기 셋, 중의 하나

진한 책향 남기기_2024.09.12

by 푸른바다와평화




비와 고요, 그사이 어딘가





나지막히 울리는 알람소리와 함께 기지개를 켰다. ‘끄으으으!!!!’ 소리를 내며 침대 헤드에 손이 닿도록 팔을 뻗어냈다. 알람을 끄고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강릉에서의 마지막 날엔 비가 꽤 내리고 있었다.








커튼을 젖히고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고 간단히 세수만 하고 냉장고 앞으로 갔다. 어제 밤, 숙소를 들어올 때 들린 편의점에서 샀던 즉석컵밥과 프로틴음료를 꺼내 들고 1층 공용공간으로 내려갔다.


7시 20분 경이었는데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는지 불도 꺼져 있었다. 혹여 쉬시고 계시는 스탭분들이나 투숙객들께 소리가 들릴까 조심히 문을 열고 불을 끈 채로 아침을 준비했다.





출처 :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이미지






비가 오니, 아침은 따뜻한 국물로 배를 채우고 싶어서 ‘사골곰탕국밥’을, 강릉에서의 마지막 날도 에너지 가득하게 돌아다니고 싶어서 ‘프로틴 음료’를 택했다.


컵반은 나의 학창시절 소울메이트였다. 든든한 한 끼를 먹고 싶은데 금전적•시간적 여유가 없는 날들이면 항상 컵반을 찾곤 했다. 조리법도 간단하고 단일 메뉴 하나로 후루룩 먹어도 배가 차는 기가 막힌 편의점 음식이었다. 오뚜기컵반, 햅반컵반을 볼 때면 학생회관이나 자취방에서 후루룩 먹고 강의를 들으러 떠나던 내 모습이 떠오르는 이유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난 후, 다시 방으로 올라가 외출 준비를 했다. 오전 8시부터 근처에 ‘고래책방&고래빵집’이라는 책방 겸 카페가 일찍 문을 연다기에 일부러 일찍 준비를 했다.


로비로 내려와 가방을 잠시 소파에 내려두고 전신거울 앞에서 사진을 찍어본다. 비 오는 흐린 날, 횡단보도를 건너는 내가 잘 보이라고 밝은 보랏빛 옷을 택해봤다. 그리고 걸어다니며 튀길 빗방울에도 티가 나지 않는 검정 슬랙스와 함께!


보라돌이~ 찰-칵!










‘GO,re' 라고 쓰여 있는 입구를 보며 새로운 설렘을 느꼈다. 저 입구 너머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지 기대를 잔뜩 품은 채 말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분위기가 좋아서 놀랐다.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오픈하자마자 와서 그런지 책방엔 사람들이 많이 없어 꽤 고요했다.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짐을 놓고, 주문을 하러 카운터에 갔다.









비가 와서 따뜻한 음료를 시킬까 고민하다가, 결국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했다. 메뉴를 주문할 때면 이곳은 ‘고래빵집’이 된다.

‘바다라떼’를 주문했는데 강릉의 바다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형태였다. 마냥 푸른색만 있는 게 아니라 바다를 이루는 모래사장도 한껏 표현이 되어 있었다. 맨 위에는 쿠키 크럼블 같은 게 올려져 있었다.

컵 겉면에 새겨진 책 속의 문구에 시선이 갔다. 라떼 속에서 왠지 은은한 책의 향기도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음료를 테이블 위에 둔 채 책방 내부를 구경하러 움직였다.

저마다 선반 위로 꽂혀있는 책들을 볼 때면 정겨운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그들의 제목을 하나씩 훑어보며 책들 사이를 거닐었다. 눈길이 가는 책 표지 혹은 제목을 지닌 도서 앞에 멈춰 서서 지긋이 바라보았다.








한참을 책 사이사이 거닐던 와중에 어떤 여자분께서 지긋이 나를 쳐다 보시더니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혹시... 발레....하세요...?”

“네...? 발레요?”

“아니 어깨가 엄청 딱! 똿! 라인이 있으셔서 발레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래요..? 그런 말 진짜 처음 들어보는데...감사합니다!

혹시 여행 오신 건가요?“

“네, 맞아요! 다른 데 들렸다가 저도 강릉 왔거든요!”


그렇게 서로 여행길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그렇게 찰나의 인연을 만날 수 있었다. 강릉여행을 떠나온 처음보다 새로운 사람들에게서 느껴졌던 어색함이 조금은 풀린 느낌이 들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여러 책들을 구경하다 나는 책 두 권을 집어들었다. 고양이와 시를 애정하는 내게 눈에 띈 책이었다. 제목은 <고양이와 시>. 다른 한 책은 베일에 가려진 랜덤책이었다. 푯말만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오후에 카페를 들린다면 거기서 뜯어보리라!





따뜻함을 숟가락 가득







푸른색 색소와 커피가 함께 녹아 초록빛으로 물들어가던 때, 그때 카페 밖을 다시 나왔다. 숙소에서 짐을 마저 싸고 체크아웃을 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고래책방에서 구매했던 작은 마그넷을 펼쳐본다. 평소라면 마그넷 같은 건 정말 안 사는데 왠지 이번만큼은 사고 싶어졌다. 코어힘으로 중심을 잡고 파도를 타는 저 서퍼의 열의가 마치 나의 코어에 힘을 주는 것 같았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열심히 찍은 사진들도 새하얀 이불 위에 펼쳐 보았다. 같은 날이어도 서로 다른 빛을 담고 있고, 날이 흐리든 맑든 그 고유의 풍경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소중한 ‘과거’가 되었다.










체크아웃 준비를 마친 후 시간이 남아서 유튜브로 판다 영상을 틀었다. 러바오를 화면으로나마 쓰담쓰담 해주고픈 마음을 보내본다 : )










밖을 나서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숙소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정선이모네 콧등치기 국수’라는 식당이 있었다. 오픈 시간에 맞춰가서 그런지 내가 첫 번째 손님이었다. ‘장칼국수’ 한 그릇을 먼저 시켰다. 비 오는 날 뜨끈한 국물이 너무 먹고 싶었다.










한그릇에 9,000원이었는데 생각보다 양도 많고 감자옹심이도 들어가서 푸짐했다. 국물은 너무 걸쭉하지도, 너무 묽지도 않은 점도였다. 국물 먼저 한 숟가락. ‘캬~’ 소리가 절로 나왔다. 기본 세팅된 김치도 깔끔하니 맛있었다. 내 배에 공간이 훨씬 넓었다면 아마 밥 한공기도 말아 먹었으리라!









칼국수를 먹다보니 비 오는 날의 파전도 너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소짜리로 하나 주문했는데 혼자 다 먹기엔 생각보다 크기가 커서 조금은 남긴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거의 3/4 정도는 먹은 것 같다.


계산을 하고 나온 뒤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다시 밖을 나섰다.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발걸음이 따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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