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2_책과 커피로
비, 그리고 교동899
강릉시립미술관에서 나와 언덕을 내려가면 좌측에 거의 바로 '교동899'라는 고즈넉한 카페가 하나 있다.
돌아가는 KTX 시간이 아직 남아있어서 커피 한 잔을 하고 가기로 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가게 내부엔 사람들로 크게 북적이진 않았다. 얼른 창가쪽 자리를 찜했다. 한옥과 비오는 날의 풍경. 이 둘은 세트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얼른 선점할 수 밖에!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메뉴가 존재한다면 잘 시키는 아인슈페너다. 정갈하게 나무로 된 트레이에 갈빛의 아인슈페너가 나오니 설렜다. 부드러운 크림을 숟가락으로 떠먹을 생각만 해도 달달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고래책방'에서 구매했던 랜덤 도서를 꺼내본다.
"어떤 책들이 우리를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세계로 이끈다면
책방은 그 우연한 마주침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다."
랜덤 책갈피에 써 있던 내용이다. 이 책은 나를 어떤 세계로 이끌어줄 책일지 궁금해하며 리본을 풀어낸다.
김초엽 작가님의 에세이 <책과 우연들>이었다. 집에 가면 열심히 읽어내야지.
먼저 읽어내고 있던 <고양이와 시>를 마저 읽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터라(물론 키우지는 않지만 랜선 집사로서) 고양이와 사람의 특성을 소재로 쓴 글이 술술 읽혔다.
"시는 사람의 안쪽에 켜켜이 쌓이던 풍경을 상영하고,
고양이는 바깥에 이미 벌어진 풍경을 가슴 안쪽에 몰래 물어다 놓는다" - <고양이와 시>, 서윤후 中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썬 캐처가 눈에 들어온다. 비 내리는 날에도 어딘가에 햇빛은 있을 거야.
여기로 들어오세요, 기꺼이. 흐린 날의 귀한 햇빛이여.
빗방울 때문에 더욱 선명해진 풀들의 색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캐리어와 배낭을 들고 강릉역으로 향했다.
다음에 또 만나자, 우리!
<강릉일기>를 마치며,
강릉여행이 내게 남긴 것
동네 카페에서, 어느 볕 좋은 날. 카페 한 자리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이 글들을 써내려간다.
숨 한 번 돌리자고 무작정 떠난 여행은 정말 나를 숨쉬게 해주었다. 우리는 평소에도 숨을 쉬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순간에 몸에 힘을 주다보면 숨을 '참을 때'가 생기곤 한다. 그 참음의 시간이 더 쌓이기 전에 떠난 짧은 여행을 나는 이렇게라도 기록해낸다.
여행 이후에 남긴 사진들과 생각들을 풀어내다보면, 그때 당시 들었던 생각을 바로바로 기록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에 글을 쓰지 않고 비워둔다면 그것 또한 그것대로 서운할 테다.
누군가에겐 내 글이 소소한 여행 정보를 얻는 글이 되었을 수도, 강릉의 사진을 보는 글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소소한 위로와 힐링이 되었을 수도 있기를 바란다.
그걸로도 난 좋다. 무엇이든 다 좋다.
이번 <강릉일기>는 마무리하지만, 스핀오프처럼 강릉여행 이후의 삶도 기록해보고자 한다.
지켜봐주시라. 시간은 걸려도 하나둘씩 채워지는 소중한 '일기장'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