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2_별을 찾을 용기
내 안의 별 찾기
든든하다 못해 빵빵해서 고통스럽기 일보직전인 배를 부여잡고 한 손엔 캐리어를, 다른 한 손엔 우산을 잡고 걸음을 옮겨본다.
비가 올 땐 돌아다니는 것을 꺼려하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양손이 불편해도 발걸음이 향하는 걸 어찌 하겠는가. 내 발걸음은 나만이 말릴 수 있는데 내가 빗속을 뚫고서라도 '미술관은 가야지 쓰겄다!'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선이모네식당'에서 우산을 쓰고 털레털레 걸어갔다. 걷기에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걷다보면 '교동899'라는 카페를 지나서, 약간의 언덕으로 더 올라서면 '강릉시립미술관'이 있다. 진분홍색 꽃을 피워낸 나무가 미술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미술관 입구를 열자 안경을 쓰신, 친절한 직원분께서 안내를 해주셨다. 엄청 친절하셔서 비오는 날 찝찝함을 느끼던 내 기분이 괜스레 좋아졌다. 작은 친절이 불러오는 감사한 감정의 변화였다.
점심 시간대여서 그런지 관람객이 거의 없었는데 오히려 혼잡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춤, 흐르는 물결, 일렁이는 마음, 꿈꾸는 표류>라는 제목의 김선우 작가님의 전시였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 물결이 가득한 포스터를 보며 이끌리듯 전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 김선우 작가님에 대해 나는 잘 몰랐었다. 그런데 첫 작품을 보자마자 작가님의 팬이 되어버렸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한가운데에 위치한 '도도새'였다.
넌 누구니?
황금빛 물결에 앉아 눈을 감고 지금의 공기와 온도를 느끼는 듯한 도도새가 마음을 울린다. 나도 저 도도새처럼 아주 잠깐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내쉬어 보았다.
나는 어떤 흐름으로 지금을 보내고 있는가?
작가님이 전하는 메시지를 보며 눈물이 날 뻔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어쩌면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도달했는지도 모르겠다. '미완의 상태'에서도 뜨거운 마음으로 꿈꾸며 살아가는 생활이야말로 바로 우리들의 삶일 것일 테니.
마치 그 꿈을 찾아 날아드는 나의 모습이 저 도도새들에게서 느껴졌다. 미완의 상태에서 나의 꿈을 향해 마음껏 춤추어내고, 마음껏 바라보고, 마음껏 표현해 내는. 작품 속에서 무언가 형언하기 어려운 위로를 받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 켠에 마련된 전시공간 속에 앉아 작가님의 '작가노트 영상'을 들여다 보았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작품을 다뤄 오셨는지가 짧은 영상물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쩌면 춤은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반영된 하나의 의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저는 우리의 인생이 자신만의 춤을 완성시켜 나가는 하나의 과정과 같다고 느낍니다."
- <<춤, 흐르는 물결, 일렁이는 마음, 꿈꾸는 표류>>, 김선우 작가님의 '작가 노트' 中
그렇게, 영상 속에서 마주한 작가님을 통해 남은 전시에서 조금 더 따뜻함을 받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해 받은 듯했다.
조금은 짙은 빛의 세상 속에서 발견한 한 줄기의 별을 찾아낸 도도새들. 작품을 바라보다 보니, 도도새가 찾아낸 별들을 나도 찾고 싶어졌다.
이 글이 참 많이 와닿았다. 내가 강릉을 찾아온 순간들이 바로 '잠시 춤을 멈추고 떠날 풍경'을 찾아온 것 같아서다. 그 순간에 만난 김선우 작가님의 작품들이 내 안의 무언가를 뜨겁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감정을 가리켜 '따뜻한 위로'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당신은 분명히 조금 더,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 김선우 작가님 작품 中
캔버스 위로 작품 전체를 감싸안고 있는 듯한 도도새에게 시선이 갔다. 찾아온 별을 더 크게 품어주는 듯한 귀여운 도도새에게 벌써 스며든 나다. 어쩌면 소중한 자신의 별을 지키려는 용맹한 도도새인 걸까.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 그것은 정말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터. 나 또한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여 다른 직업을 갖으며 나아가려 할 때 밀려오는 불안함의 크기는 꽤 컸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한 감정들은 대신, 나를 한층 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해주었던 양분이 되어왔다. 그 양분은 바로 효과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훗날의 더 견고한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산물인 것이리라.
반짝이는 별을 찾아가는 과정에, 우리가 지니고 있는 그 "반짝이는 열망"은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세상이라는 재단사의 가위질 사이를 넘어 우리의 열망을 마음껏 뿜어내 볼 수 있는 기회가 조금 더 많이 주어진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진다.
그리고 나는 그 가위질 사이 속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나란히 마주앉아 서로를 응시하는 도도새에게서 용기를 얻고 간다. 아니, 전시회에서 만난 도도새들 모두에게서 포근하고 귀여운 위로를 내가 맨 가방만큼이나 잔뜩 받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전시 관람을 마친 후, 여전히 친절하신 직원분의 인사를 받고 미술관 밖을 나섰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어 우산을 폈다. 촥-! 우산을 펴고 얼굴로 튀기는 몇 방울의 물들이 찝찝하지 않고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