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바다와평화 Nov 13. 2024

강릉일기 둘, 중의 셋

어떠한 날에도, 바다!_2024.09.11




빵 굽는 갈매기




   11시가 넘어서 식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일식을 파는 곳이었는데 벌써 손님이 꽤 많았다. 나처럼 혼자 점심을 먹기 위해 온 손님들도 간간이 보였다.









   나는 연어사케동을 주문했다.

   어렸을 적엔 날 것의 음식을 싫어했다. 부모님께선 늘 회를 먹게 되면 나보고 한 번만 먹어보라고 그렇게 권하셨던 기억이 난다. 뽀얀 광어회 한 점을 코 앞에 보여줘도 싫다 하던 나였다.


   언제부터 잘 먹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는다. 언젠가 초밥뷔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는데, 참 힘든 아르바이트였다. 일의 강도가 고된 것이 아니라, 초밥을 좋아하게 된 나는 눈앞에 보이는 먹음직스러운 초밥들을 보고 참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좋았했던 때는 식사시간이었다. 마음대로 초밥을 먹을 수는 없었지만, 가끔 초밥 몇 점을 허락받은 날이면 집에 돌아가서 ’나 오늘 초밥 먹었어!‘를 자랑하곤 했었다.

   










    사케동과 함께 물만 마시려고 했는데, 메뉴판에 보이는 바다를 닮은 ‘봄베이 사파이어 하이볼‘에 매료돼 함께 주문했다.

   

   하이볼 한 모금에 바다로 시선 한 번.










   식사를 마친 후, 경포해변을 다시 방문했다. 사각거리는 모래를 가득 밟으며 시선을 옮기다 보면, 모래와 바다의 경계에 걸려 있는 갈매기 한 마리가 보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갈매기가 고양이처럼 빵을 굽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새초롬한 모습으로 하나둘씩 날아와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얇은 다리로 총총총 걸어가다 마음에 드는 자리였는지 뽁-하고 앉아낸다.




    







   그들이 날아가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만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 옆에 나도 뽁-하고 앉아본다.


   나부끼는 바닷바람에 갈매기들의 머릿깃이 팔락거린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카메라를 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언제 또 빵을 굽고 있는 갈매기들 옆에 앉아볼 수 있겠나 싶어서.









   경포해변을 지나 강문해변의 출발을 알리는 ‘솟대다리’에 이르렀다.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고 갈 때의 등굽이를 닮은 구조물을 따라 걷다 보면 애정하는 나의 강문해변이 다시 펼쳐진다.








   솟대다리에는 솟대가 있는 걸까? 예전엔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아주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리 아래로 솟대가 보인다. 그때 한 번 더 빌어본다.


   나의 안전한 여행을 부탁해.









바다라는 음악





   풍족하게 먹은 점심밥이 소화되는 속도가 더딘 것 같아, 나는 다시 무작정 걷기를 선택했다. 안목해변까지 걸어가 볼까 하는 대범한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중간 정도 걷다가 나오는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점심을 일찍 먹고 움직여서, 때는 태양의 고도가 아주 높아져 있는 한낮이었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하늘 아래로 쏟아지는 햇빛은, 양산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목과 팔 부분을 부지런히 태우고 있었다. 온몸이 땀에 젖었을 때, 나는 초당분수공원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또다시 200번대 버스를 타고 안목해변으로 향했다.





2017년도, 그리고 2024년도의 골목에서






    정류장에서 내려 맞은편에 보이는 '안목역카페'를 기점으로 왼쪽에 안목해변으로 가는 아늑한 골목이 하나 있다. 내가 기억하는 이 골목은 7년이라는 세월이 물들인 바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2017년도, 그리고 2024년도의 벽화는





   벽에 그려진, 낙서를 하는 아이들의 옷도 바래 있었다. 7년이 지나서 느껴지는 건지 아니면 벽 속의 아이들이 커 가면서 옷이 늘어나서 그랬던 걸까. 여전히 그 자리에 낙서하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에 나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돌았다.









  골목길이 끝나는 순간, 그리고 안목해변을 만나기 전에 놓여있는 도로가 보인다. 카페로 즐비한 거리 속 주차된 차들을 지나면, 나를 반겨주는 안목해변이 나타난다.










   안목해변은 강문해변보다는 항상 사람이 좀 더 많다고 느껴진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해변을 풍경 삼아 자리한 카페마다 들어차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각거리는 모래를 밟고 해변과 마주했다. 오랜만이야, 안목해변아!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왔을 때 방문했던 카페 ‘보사노바’에 들어갔다. 배는 불렀지만 더운 날씨 때문인지 갈증은 계속 났기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었다. 그리고 핸드폰 배터리도 충전할 겸 말이다.

   2층의 창가 쪽은 이미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나마 창이 보이는 방향으로 난 자리에 앉았다. 콘센트도 마침 옆에 있는 자리였다.


   








   충전도 어느 정도 하고 나의 갈증도 채워졌을 때, 다시 카페를 나와 걸음을 옮겼다. 안목해변에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보였고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포토부스 건물은 풍경 맛집이었다. 붐비는 카페에서 보지 못했던 해변의 전경을 여기서 고요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바다의 푸른색이 참 좋다. 누군가는 바다와 같은 물을 오래 보고 있노라면 우울해질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바다에게서 생명 넘치는 활기를 얻고 간다.









   사진을 찍고 나와서,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 위해 기다리는 버스가 아직 오지 않아서 바다와 함께 좀 더 머물러 있기로 했다. 이 날은 오후 3시 이후부터 구름이 끼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그 시간을 맞춰 하늘엔 회빛 먹구름들이 하나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가득해진 구름 사이로, 그래도 햇빛은 성실하게도 뚫고 내려왔기에 양산을 쓴 채로 털썩 해변가에 앉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 옆의 사람처럼 앉았다. 그녀도 양산을 쓰고 해변을 향해 눈길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언가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다.

   버스가 오기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나는 에어팟을 꺼내 한쪽 귀에 끼고 음악을 틀었다.


   첫 플레이레스트는 92914의 ‘Okinawa'.


   음악을 듣다 보면 그 음악만의 고유한 이미지가 떠오르곤 한다. 어떤 음악은 하나의 강한 이미지를 갖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음악은 듣는 순간마다 다양한 이미지들로 녹여내지곤 한다.

   내겐 ‘Okinawa'는 후자와 같은 음악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조금 흐린 날 듣는 Okinawa를 좋아한다. 혹은 비가 내리는 날도 말이다. 살짝의 잿빛을 머금은 하루의 와중에 흘러 들어오는 선율이 제법 맛깔난다.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들을 가득 듣다가 메고 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다. 금세 달라진 하늘의 빛으로 바다 또한 새로운 빛깔을 내뿜게 되었고, 나는 그 순간을 사진 속에 담아본다.


   흐린 날의 너 또한 바다이기에, 나는 오늘도 너를 애정한다.

작가의 이전글 결승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