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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바다와평화 Oct 22. 2024

강릉일기 둘, 중의 하나

오늘도 해는 뜨지_2024.9.11




6시 02분에 만난 희망




    밤사이 땀이 흠뻑 나서 몇 번을 깼다. 집처럼 편하게 창을 열 수가 없어서, 선풍기 타이머를 맞춰두고 돌려서 그런 것 같다. 밤새 에어컨을 켜자니 호흡기와 너무 가까운 위치라 기침이 날 것 같고, 그렇다고 선풍기를 계속 틀어놓자니 감기에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땀을 내는 편이 낫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불이 두터웠는지 땀이 꽤 흥건했다.


   새벽 4시 15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한번 깼다가, 20분에 다시 울리는 알람소리에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면서 이불을 팡팡 거리며 더 자고 싶어 하는 심신을 몸부림치며 일으켰다.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며 방 불을 켜고 나갈 채비를 했다.







   준비를 마치고 나와 택시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숙소 주변에는 인력 사무소가 하나 있었는데, 새벽에 수많은 노동자분들이 담배를 한 대씩 물고 대기하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빽빽한 곳을 지나갈 땐 잠시 숨을 참으며 GS25 편의점 앞에서 호출해 둔 카카오택시를 기다렸다. 승차한 택시는 연세가 조금 있으신 택시기사님께서 운전하시고 계셨다.

   

   언젠가 여행하면서 만난 택시기사님들이 참 정겨웠다. 우리 지역을 방문했으면 이곳을 꼭 가봐야 한다부터 지역맛집을 알려주시기도 하는 등 정이 넘치는 넉살에 미소가 지어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바뀐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리를 ‘대화 없음’의 익숙함으로 이끈 듯 느껴졌다. 기사님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이른 새벽시간부터 말을 건네는 것이 혹여 실례가 되진 않을까 싶어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택시로 10분도 안 돼서 강문해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사님께 “감사합니다, 기사님!”을 외친 후 강문해변을 향해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일출시간에 맞춰 자발적으로 일출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도착해서 마주한 하늘은 연한 잿빛과 적빛 그 사이에 걸쳐 있었다. 낮 시간보다 바람은 잔잔했고 파도소리가 더 부드러웠다. 아직 보이지 않는 태양의 모습에 ‘오늘 날씨가 흐린 건가?’, ‘혹시 해가 벌써 다 떠서 안 보이는 건가?’ 하는 불안한 마음에 다시 일출 예정 시각을 확인했다.


   ‘일출 예상 시각 : 오전 6시 02분’











   이른 시간임에도 해변가엔 바다산책과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로 꽤 북적였다. 그러나 소란하지 않다. 파도의 경계를 따라 맨발로 열심히 파워워킹을 하는 분들도 꽤 볼 수 있다. 역광으로 비친 그들의 모습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활기참을 선물 받은 듯하다.












   수심이 얕은 곳에서부터 출발한 패들보트가 눈에 들어왔다. 일출 스폿을 찾아서 열심히 노를 젓는 분들이 꽤 많았다. 하나의 패들보트에 3명이 나란히 앉아서 태양을 바라보는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아마 그때 내가 담은 건 ’낭만‘이었던 것 같다. 내 마음도 저 패들보트 위에 살며시 얹어서 움직이는 상상을 해본다. 철썩-솨아-













   해변을 따라, 적빛이 점점 강해지는 곳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아, 여기가 해가 잘 보이는 장소겠구나’ 싶은 곳이 있다. 걷다 보면 자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의 흔적을 찾아 모래사장에 앉았다. 에코백 속에 있던 메모패드 한 장을 부욱 찢어 반으로 접고 그 위에 털썩 앉았다. 에코백은 그냥 모래 위에 털썩- 두었다.


  6시 2분이 됐는데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고 30초가 지났을 때 진한 당근주스 색의 태양이 눈에 보였다. 그와 함께 주변 사람들의 나지막한 ‘해 뜬다, 해!’ 소리도 들렸다. 태양이 고개를 빼꼼 내밀 때, 하늘이 커튼을 걷어내듯이 시시각각 색이 변해갔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태양과 함께 내 속에서도 고개를 내밀었다. 벅참일까 감동일까 혹은 감격일까 하여. 카메라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찬란한 빛이었다. 그래서 눈으로 좀 더 담아보려고 했다.


   풍경 한 입에 정말 큰 숨을 내쉬었다. 후우-











   몇 분이 더 지나자 바다와 하늘의 경계에 걸려있던 태양이 드디어 공중부양을 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의 모습을 바다의 거울에 비춰보듯 자신의 빛을 바다에 가득 뿜어낸다. 그 빛이 바로 일출 시간의 적빛 윤슬을 만들어낸다. 그 모습을 더 가까이 보고 싶어 다가갔다.










   챙겨 온 삼각대를 한 번은 활용해 보고자 모래사장 위에 고정시킨 후 촬영을 했다. 아름다움이 눈으로 보는 것만큼 담기진 않았지만 괜찮았다.

   단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삐뚤어진 내 ‘어깨’였다. 나의 오른쪽 어깨는 항상 더 내려가 있다. 척추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짐작건대 어깨 근육의 차이가 많이 온 체형이 돼버린 것 같다. 의식적으로 올린다고 해도 금방 삐뚤어진 자리로 돌아온다. 운동하고 관리 좀 해야지라는 생각의 굴레로 빠져들기 직전, 핸드폰을 닫고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새벽이었음에도 완전히 떠오르는 태양은 벌써부터 뜨거웠다. 목에 두른 손수건이 벌써부터 축축해져 갔다.









뜨끈함을 주문했고
짬뽕이 나왔네요




    한참을 해변가에 앉아 태양을 바라보다가 정직한 배꼽시계 소리에 초당순두부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엉덩이에 묻은 모래는 툭툭 털면 금방 털어졌다. 낮과는 다르게 새벽의 습기를 머금은 모래가 시원하면서도 촉촉했다.










   나는 길치다. 세상에 GPS라는 기술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나는 매 순간 세상의 어느 한 길가에서 허둥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제 하루종일 걸어 다녔다고 금세 길이 익숙해져서 지도를 자주 보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걸어가던 길목에는 지나가는 자동차와 가게 오픈을 위해 준비하는 사장님들 외엔 이른 아침 돌아다니는 관광객은 나뿐인 것처럼 보였다. 익숙한 진녹색의 입구 표지판을 따라 쭉 직진해서 들어가다 보면 미리 찾아둔 식당이 나온다.






새벽 6시에 문을 여는 가게는 참 소중하다






   오전 6시부터 오픈한 식당을 찾다 보니 순두부마을 쪽에 ‘솔향초당순두부’라는 곳이 있었다. 대학생 때 혼자 여행 왔을 때는 담백한 초당순두부만 먹어봤었는데 이번에는 얼큰한 짬뽕순두부를 먹고 싶어서 택한 곳이었다. 활짝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가니 순두부를 닮아 부드러운 미소로 반겨주시는 사장님이 계셨다.











   식당 내부는 아주 깔끔했다. 창도 큼직큼직해서 바깥의 자연 풍경이 잘 보였다. 요즘은 주문을 서면으로 받지 않고 테이블마다 비치된 간이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는 것이 보편화된 듯하다. 심지어 이 식당에서는 결제도 비치된 키오스크로 바로 할 수 있었다. 바쁜 사장님의 일손을 덜어주고 음식을 만드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인 것 같다.


  짬뽕순두부를 하나 시켰다. 어렸을 때는 무조건 짜장면 파였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얼큰한 짬뽕파로 갈아탔다.  어렸을 땐 아빠가 먹던 짬뽕 속에 들어있는 오징어와 홍합을 뺏어 먹고자 시켰던 짬뽕이, 이제는 얼큰하고 감칠맛 나는 빨간 국물이 먹고 싶어 찾게 된다.





 





   기본 반찬 세팅도 마음에 들었다. 과하지 않게 소량만 제공되고 추가로 필요할 경우에 셀프로 찾아먹는 시스템이 좋다. 국물 한 숟가락을 마셔본다. 와, 생각보다 매웠다. 방심하고 먹었다면 기침이 날 만한 맵기였다.


  매운 것을 잘 먹지는 못하는 편이지만 아침부터 괜스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릇이 꽤 깊게 파여 있어서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양이 훨씬 많다. 오징어도 생각보다 두툼했고 홍합도 컸다. 후후 불어가며 식힌 한 숟가락이 쌓여갈 때마다 땀도 더해졌다. 미리 목에 두른 손수건이 짬뽕의 땀빵울로 흥건해진다.

  먹다 보니 단무지를 금방 먹게 돼서 리필을 한번 했다. 씁-하를 연신 남발하다 먹다 보니 어느새 손님 한 분이 더 들어왔다. 혼자 오신 손님이셨는데 나와 같이 짬뽕순두부를 시키신 것 같았다. 옆에서 국물을 들이켠 그 손님의 입에서 ‘크’ 소리와 함께 짬뽕소리의 하모니가 이어졌다.









주문하신 바다 나왔습니다!



  아침부터 매운맛과 뜨거운 맛을 잔뜩 보고 난 후, 사장님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를 외치고 나왔다.

  식당을 가면 습관이 하나 있다.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었고 서비스와 친절도가 괜찮은 식당이라면 사장님들께는 꼭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는 말을 하고 나온다. 계산을 한 후에 ’안녕히 계세요‘만 해도 요즘 시대엔 충분한 인사이겠지만, 거기에 더해 음식을 충분히 맛있게 잘 즐겼다는 인사까지 건넨다. 그러한 찰나의 인사가 때론 사장님께 기분 좋음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모든 사장님들이 그러하진 않으시지만 대부분은 그러셨다. 우리 모두 즐겁자고 사는 인생에, 즐거운 한마디 더하고 살면 좋지 아니한가!










   짬뽕순두부의 힘으로 다시 강문해변 쪽으로 걸어갔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여서 그런지 소나무로 그늘진 곳에서 부는 바람이 에어컨 바람만큼 시원하다.


   스타벅스 강문해변점에 도착했을 땐 7:50분 정도였다. 8시부터 오픈이라 해변가에 잠시 앉아 기다렸다. 물제비들이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걸 구경하다 보면 금세 8시가 된다. 나는 2층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멀리 앉을까 고민이 됐지만, 언제 이 사람 없는 한가한 시간대에 바다가 다 보이는 창가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그것도 혼자서? 그래서 나름 그늘이 진 스폿을 찾아내어 앉았다.











   사이렌오더로 시즌메뉴인 블랙 글레이즈드 라떼를 그란데 사이즈로 주문했다. 주문할 때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아, 바다 풍경을 보며 글레이즈드 라떼 그란데 사이즈라니! 이 시간만큼 세상 어느 글레이즈드 라떼보다 제일 달콤한 라떼였다고 자부한다.










   테이블 위에 오늘 아침에 찍었던 일출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나열해 본다. 그리고 볼펜으로 날짜와 함께 간단한 기록도 남겨뒀다. 분명 같은 장소였는데, 단 몇 분의 시간 변화만으로도 이렇게 다른 빛이 담길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해가 뜨기 전의 하늘은 부드러운 잿빛을 머금은 바다색이라면, 수면 위로 떠오른 해는 하늘을 자신과 똑같이 정열적인 주홍빛으로 물들게 했다.










   어제 유리알유희에서 산 엽서를 들고 나오길 잘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흐릿한 곳을 향해 엽서를 들어 돌고래를 날아오르게 했다.


   ‘오늘도 날아가렴, 더 멀리!’









   멍을 때리기도 해 보고, 노트에 끄적끄적 글을 쓰며 라떼를 입안 가득 머금고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시간이 다 무언가 싶어 진다. 바다와 함께 유유히 함께 춤추고 싶다는 상념이 넘실댄다.

   한참을 카페에 머물다 라떼를 다 마셨을 때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강문해변에게 인사했다. 깊은 푸르름이 다시 그리워질 날이 반드시 있겠지. 그래서 또 너를 찾게 될 날이 오겠지.


   ‘다음에 또 올게~! 그러니 그동안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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