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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바다와평화 Oct 29. 2024

강릉일기 둘, 중의 둘

기어는 1단입니다만_2024.09.11






바람타고 자전거를 휘날리며





   강문해변과의 눈인사를 나눈 뒤 경포호수를 가기 위해 '강문해변입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면 금방 가겠지만, 이렇게 시내 버스로 이동하면 왠지 나도 모르게 강릉 주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매력적인 교통수단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200번대 버스 번호는 없다. 하지만 강릉 시내에는 201번, 202번, 202-1번 처럼 200번대 버스 번호가 꽤 많다. 익숙하지 않은 번호를 지닌 버스를 탑승하면 내가 모르는 미지의 정류장에 하차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두유색을 가진 우양산을 쓰고 빨간색 표지판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내 뒤에 있던 배롱나무가 나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분홍 꽃들이 짙푸른 하늘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을 구경하다보니 멀리서 오는 버스 한 대가 보였다. 드디어!









  딱 두 정거장을 지나 경포해변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내리자마자 노란색 간판으로 대문짝만하게 '바이크스토리' 라고 적힌 대여점이 보인다. 넓은 경포호에서 전기자전거를 타며 시원하게 바람도 쐴 겸, 대여점으로 향했다. 대여소 앞에 다다랐을 땐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께서 쪼그려 앉아 업무를 보시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아, 예! 어서오세요!"

  "저...전기자전거 좀 빌리려고요!"

  "아, 저희 직원이 안내해주실 거예요 : ) "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직원분께 나를 인계하셨다. 해변가의 구조대원님들께서 가지실 법한 건강한 구릿빛 피부 위에 선크림을 잔뜩 바른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안내해주셨다. 짐을 맡기고 타겠냐는 말에 처음엔 그냥 메고 타겠다 했다가, 둘러멘 에코백이 자유로운 내 자전거행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다시 맡아 달라고 부탁드렸다.

  휴대폰과 수분 보충을 위해 500ml 물병을 자전거 앞쪽 보관바스켓에 넣고 출발했다.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크로스로 단단히 끼고 말이다. 천천히 풍경과 바람을 즐길 목적이어서 기어는 1단으로 시작했다.


  페달을 밟을수록 귀에 때려 박히는 바람소리가 신명난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호수의 풍경을 담기 위해 잠시 멈춰섰다. 경포호의 시그니처로 스카이베이 호텔이 빠질 수 없다. 호숫가 사진에 새하얗게 걸리는 호텔이 마치 거대한 구름 덩어리 같다.

  

 익숙한 풍경에 '하- 그래, 이거야'를 연신 읊어댔다.











   달리다가 이내 멈춰서서 바이크를 두고 호수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 오늘 자전거 탑니다!'를 외치듯이.


   내가 대여한 자전거는 페달을 한 바퀴씩 밟을 때마다 끽끽 소리가 심하게 났다. 내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공개 알림을 주는 것 같아서 처음엔 무척 신경쓰였지만 이내 청각신경이 적응을 마쳤는지 그러려니 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참을 호숫가를 바라보며 가다가, 2단으로 기어를 잠깐 두고 살짝 속도를 내어 바람을 느꼈다. 질끈 동여맸던 나의 잔머리는 바람따라 기어코 신명나게 빠져나와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다. 잔머리가 내 눈을 계속 간지럽힐 때 잠시 페달을 멈추었다. 멈춘 곳에는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가 잔뜩 피어 있었다.










   호수의 둘레를 따라 색색의 연등이 걸려 있었다. 불교 행사가 있나 싶어 이번 달에 어떤 날이 있는지 떠올리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나는 쭉 뻗어있는 형상을 선호한다. 특히나 나무로 만들어진 형상이라면 더더욱. 잠시 멈추어 생수 한 모금 가득 들이켜고 카메라를 켠다. 유난히도 뜨거운 햇볕에 그리 오래 버티고 서 있지는 못했다.










   중간에 사잇길이 보여, 자전거를 이끌고 들어간 곳은 연잎이 가득한 정원이었다. 토토로가 당장이라도 하나 꺾어서 우산을 쓸 것만 같은 크기였다. 혹시 모르겠다. 이곳 사이사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몸을 작게 만든 토토로가 있을지도 : )








  

    안쪽 데크로는 자전거를 끌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바깥쪽 산책로를 택했다. 이 길로 산책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나는 기어를 잠시 2단으로 바꾸고 짧은 질주를 했다. 얼굴은 햇빛 때문에 뜨겁지만 동시에 나부끼는 바람 덕분에 시원함이 동시에 들어온다. 그때 맞은편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보였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이크전용 수트를 입고 내달리는 모습에 괜히 반가웠다.


   이 길을 따라 직진을 하면 반납시간을 넘길 것 같아서 중간에 왔던 길로 유턴을 했다. 인적이 드문 시간대와 길이었기에 기어를 다시 2단으로 올렸다.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서 쫄보인 나는 금방 1단으로 내렸다.


   그래, 1단으로도 충분하지!










  기어를 다시 1단으로 놓고 보고 싶은 풍경을 마음껏 구경하다보니 금방 40분이 지나갔다. 자전거 반납을 위해 되돌아가는 길에, 호수와 가까운 지점에서 잠시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며 호수의 일렁이는 작은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의 속삭이는 소리였다.

 

   쉬이-쉬이.


  대여점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반납했다. 총 50분 정도 알차게 탔던 것 같다. 자전거에서 내려 두 발을 착지했을 때, 헬스장의 러닝머신에서 달린 후 바닥을 밟았을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한마디로 이상했다는 뜻이다.





 





좋을 땐 좋다고 말하시오




   자전거를 타면서는 우양산을 쓸 수 없었기에 흘러내리는 땀을 막기는 힘들었다. 다행히 오늘도 목에 두른 가제 손수건 덕분에 티셔츠의 목부분이 흥건해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기엔 살짝 이른 시간대여서 경포해변을 보고 가기로 했다. 사실 경포해변을 보고 갈 생각은 없었는데 여유가 생겨서 들려보기로 했다.











   오전 10시 20분 경의 경포해변은 잔잔했다. 그리고 이미 폐장한 해수욕장이기도 하고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경포해변은 안목해변보다도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이다. 바다의 색감은 안목과 강문해변의 중간 색감이지만 좀 더 온화하다. 해변 입구쪽에 '좋을 땐 좋다고 말해' 라고 쓰여진 포토존 구조물이 보였다. 지금 떠오르는 그 감정을 내뱉어보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그래, 나 지금 좋다, 좋아!











   해변길을 따라 걷다보면 뜨거운 태양 아래 그대로 몸을 맡긴 한 외국인 커플이 눈에 띄었다. 그 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나는 조금만 쐬어도 따가운 햇볕인데 태닝을 시도하는 저들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양산을 쓰고 걸어도 목과 팔이 너무 뜨거워서 해변 뒤쪽에 해송으로 그늘진 벤치에 앉아 잠시 열기를 식혔다. 가려는 식당이 오픈하려면 11시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땀도 식힐 겸, 바다멍도 때릴 겸 앉았다. 주변의 데크에서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서 대자로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멀리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멍을 때리는 것이 정말 쉬워 보여도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님을 체감했다. 잡념없이 그저 들려오는 바람과 파도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자 할 때 현실의 불안정으로부터 오는 각종 생각들이 함께 들이치곤 한다. 그때 다시 멍 때리기에 집중하는 방법은, 밀고 들어온 생각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도록 가득 환영한 뒤, 충분히 느끼고 나면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숨을 함께 뱉어내면 다시 멍을 때리기 위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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