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잠시 숨을 골랐다. 짧게 짧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잠시 스스로를 다스렸다. 조금씩 아득해지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걸 느꼈다.
동시에 어두웠던 시야도 함께 되찾았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죽 소파 한가운데, 한 번도 본 적 없던 남성이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부는 구릿빛으로 그을러져 있었고, 얼굴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주름져 있었다.
“안녕.”
짧게 남성이 인사를 건넸다. 무슨 상황인지 전혀 가늠조차 되지 않아 지원은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냄새의 원인은 분명했다. 이 집에 새로운 존재는 그 남자, 하나뿐이었다.
“나 기억하니? 너 어릴 때 몇 번 본 적 있는데. 엄마 고향 친구야. 시장에 엄마 손 잡고 가끔 왔잖니. 우리 가게에 오면 꼭 고등어 사달라고 졸랐었는데. 많이 컸네”
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 깊이 가려져있던 기억 하나가 끄집어졌다. 유치원도 다니기 전이었나, 엄마와 항상 시장에 함께 갔었다. 고등어를 워낙 좋아했던 지원이었기에 항상 고등어를 사달라고 졸랐었다. 냄새에 예민해진 이후로는 어떤 생선도 입에 대지 않게 되었지만. 하지만 그 생선가게 사장님이 기억나진 않았다. 희뿌옇게 무언가 가려진 듯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아, 기억나는 듯해요. 안녕하세요.”
“기억나는구나. 기억해 주는구나. 고맙다.”
남자의 주름진 얼굴 한가득 기쁨의 미소가 들어찼다.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은 그러나 미소가 번지자 더 일그러졌다. 미소로 오묘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지원의 눈에는 미안하게도 괴기스러워 보였다. 어떤 인생을 살면 저런 냄새와 저런 주름을 갖게 하는 걸까.
“아, 아니에요. 근데... 저희 엄마는 혹시 어디 계실까요?”
“엄마는 잠시 장 보러 가신다고 나가셨어. 근데 지원이 네가 돌아올 거라는 얘긴 없었는데. 회사 간 거 아니었니?”
엄마는 저 생선가게 주인에 대해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집도 아닌, 서울 지원의 집에 갑자기 어린 시절 추억 속 살짝 걸쳐진 사람이 들어와 있다. 자신이 얼마나 냄새에 예민한지 가장 잘 아는 엄마가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 갑자기 일이 생겨서 오늘 하루 회사에 연차를 냈어요. 엄마는 언제 나가셨어요? 집에 손님이 온다는 말씀이 없으셨거든요.”
“응. 내가 갑자기 찾아온 거라. 미안하다. 엄마는 곧 오실 거야. 나도 곧 갈 거고.”
남자는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 머쓱해서 짓는 머쓱한 표정이 아니었다.
입꼬리는 오묘하게 치솟아 있었다.
역한 냄새는 끊임없이 지원의 폐로 스며들고 있었다.
--- 다음 화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