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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트랜드 Aug 20. 2024

레몬향이 나는 남자.

4. 행복과 불행의 공존.

“이 집이라고요?”

“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이상하게 낯익은 벽돌집의 낮은 담장을 바라보던 준서. 여긴 분명 처음 와보는 동네였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동네였는데,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담장이라 그런가, 준서는 그렇게 담장 너머 집을 주시했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못 했네요. 제 이름은 강지원이에요. 혹시 이름 여쭈어도 되나요?”

“아, 제 이름은 하준서입니다.”

“하준서... 알겠습니다! 데려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닙니다. 아, 연락처를 주고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저희 비서가 보험사 통해 연락을 드리긴 할 텐데, 그래도 병원을 함께 가려면 일정을 공유해야 할 것 같아서요.”

“오! 그러네요! 폰 주세요~ 제 번호 찍어드릴게요!”     


기다렸다는 듯 준서의 폰에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 찍은 지원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언젠가 들어본 적 있던 성시경 노래 한 구절이 지원의 가방 안에서 흘러나오자, 지원은 냉큼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휴대전화를 다시 준서의 손에 건넸다.


준서는 먼저 폰 번호를 주고받자고 말한 게 자신이었다는 걸 순간 잊었다. 그럴 정도로 지원의 움직임은 절도 있고 자연스러웠다. 이후 벨트를 푸는 손짓과 함께 자신을 흘깃 바라보는 지원의 눈빛에 아쉬움이 어린 듯한 건, 착각이었을까.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조만간에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정말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쓰시는 바디워시 제품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준서는 순간 피식 웃었다. 지원의 해맑은 표정과 질문 수준이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저런 표정으로 자신에게 바디워시 제품을 묻고 있었다. 대체 저 이상한 여자는 오늘 자신과의 만남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지금 이 시점에 기억이나 하고 있는 걸까?     


“친구에게 선물 받은 걸 쓰고 있는데, 프랑스어로 쓰여 있어서 제가 제품명까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집에 가서 사진 찍어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와! 진짜요?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정말 감사해요. 꼭 보내주셔야 해요! 직구해야 하려나...”   

  

중얼거리며 보조석 문을 닫은 지원이 뒤돌아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준서는 그 답지 않게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지원은 이후 다시 지원을 돌아보지 않았다. 한 번쯤 돌아볼 법도 하지 않았나, 생각하다 준서는 또 피식 웃고 말았다. 대체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준서는 닫힌 대문을 잠시 지켜보다, 조용히 시동을 켰다. 이제 정말 일을 하러 가야 할 때였다. 동네를 벗어나 큰길로 들어서자, 마치 오늘 아침 있었던 소동이 꿈만 같았다.      


“오늘 신차 대박 나려나... 액땜을 크게 했네.”     


그때, 운전석 옆 공간에 놓여있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회사인가 싶어 정차 중 전화기를 든 준서의 눈에 들어온 화면 속에는 ‘강지원-교통사고 피해자’라고 써져 있었다. 아까 그녀가 직접 저장한 그녀의 전화번호였다.




지원은 레몬향이 사라진 세상을 뒤로하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곳은 자신의 익숙한 향이 가득 배인 공간이었다. 그리고 지원은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얻었다. 어떤 인연에서 그를 만나게 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병에 걸린 자신의 인생에 잠시나마 일상을 찾아줄 누군가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원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인성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외모도, 나쁘지 않았지.      


그러나 금세 지원은 슬쩍 지었던 입가의 미소를 지워냈다. 지금 집에는 엄마가 와 계셨다. 왜 이 시간에 집에 왔는지 설명하려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엄마에게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와, 레몬향이 나는 남자의 존재를 설명할 생각에 약간 설레기도 했다.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예민하고 과민한 엄마였다.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띠띠띠띠띠띠’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열자 갑자기 상상도 못 했던 냄새가 콧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뭐지, 이 역한 냄새는.


몇 년 사이 이토록 짙은 더러운 냄새는 처음이었다. 시장에서 오랜 시간 생선을 도려내는 데 쓰인 칼끝에 베인 듯한 비린 냄새, 하수처리장에 모여든 오물이 가득 섞인 더러운 물가에서나 맡을 법한 냄새가 마구 뒤섞여 있었다.  


냄새에 지원은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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