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적 인싸템
김밥싸기와 육아의 공통점이 있다.
1. 볼 땐 쉬워보이나 직접해보면 당분간 그 일을 하기 싫다.
2. 고 난이도 기술을 요하는 육체 노동이다. (순간 ‘김밥싸기 쉬운데’라고 생각하는가? 완벽한 재료로 김밥의 옆구리를 터뜨리지 않고 재료 가운데로 골인 시켜 둥글게 말기란 쉽지 않다.)
3. 간 보기가 핵심이다.(김밥은 밥이나 야채 간보기, 육아는 우리 아이 간보기;;)
마지막으로 안 해본 사람은 이것에 대해 ‘말을 하지 말 것.’이다. 앞으로 ‘점심뭐먹지? 김밥이나 싸먹을까??’ 라는 말은 입에도 담지 말 것을 당부한다.
워킹맘에게 새벽 김밥싸기는 마치 전투를 준비하는 특전사(늘 말하지만 군대는 안갔다 왔다. 그래도 전투육아라고 하는 이유가 있을지어다.)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어제 퇴근하자 마자 ‘마트’ 무기 매장에 가서 김,단무지,시금치,햄 등등의 무기를 구입했다. 롱다리 맥주 한 캔을 까고 재료 손질부터 시작했다. 노동에 앞서 전의를 다지는 맥주 한 캔은 필수이다.(관우처럼, 이 맥주가 미지근 해지기 전에, 재료손질을 다 마치겠소.)
김밥을 싸 본 사람은 알겠지만 김밥 싸기의 팔할은 재료 손질이다. 특히, 나 같은 워킹맘처럼 아침시간이 분주한 사람에게는 구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근 썰어 볶기, 시금치 데치기, 햄 잘라 놓기, 쌀 씻어 놓기 등등...내일 아침에는 평상시보다 조금, 아니 조~오금 더 일찍 일어나 말기만 하면된다. 자꾸 되뇌인다. 말기만 하면 된다. (현실은 ‘나 떨고있니?? 자고있니???’)늦잠잘까 밤새 뒤척인 것은 묻어두자.
4시 40분 기상,,
어제 준비해 놓은 재료를 모두 꺼낸 후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갑자기 추억 소환이 필요하다. 육아를 하면서 친정 엄마를 자주 떠 올리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릴 적, 내가 소풍가는 날이나, 언니들이 소풍가는 날이 되면 엄마의 도마소리(다다다다다닥..당근채써는...듯한)에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 졌다. 어쩌면 도마 소리 보다는 설레임에 들 떠서 눈이 떠졌는지도 모르겠다.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설레임이다. 엄마는 항상 형제 중 1명이라도 소풍을 가면 새벽같이 일어나 우리 모두의 도시락을 김밥으로 꼭꼭 채워주었다. 우리는 자식이 넷이라 소풍가는 날도 꽤 자주 돌아왔는데 그 때마다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김밥집이 흔하지 않았기에 엄마가 김밥을 싸주어야만 먹을 수 있는 특식이었다.
엄마 옆에 앉아, 옆구리 터진 김밥, 계란, 햄 꼬다리 등을 먹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가정 주부인 엄마에게는 엄마 김밥에서만 볼 수 있는 특급 요리 비법이 있었다. 바로 네모난 네모 김밥이었다.! 지금은 검색창에 김밥을 검색하면, 네모 김밥, 꽃 김밥, 물방울 김밥 등 김밥의 모든 것을 블로그에서 검색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때 그 시절엔 네모김밥이라 함은 며느리도 모르는 할머니의 비법 처럼 엄마만이 갖고있는 특급 레시피였다.
그런 네모김밥을 도시락에 싸가는 날엔 나는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다. 학부모들로부터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도시락을 선물받은 선생님들도 나의 네모 김밥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다며 하나씩 맛보았을 정도이다. 사실 들어가는 재료는 똑같으니 김밥맛은 대동소이하나 정성만큼은 두배로 들어가니 누구나 맛보고 싶었나보다.
그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며 식구들 먹일 생각에 흐뭇했을 엄마 마음을 잠시 짐작해본다. 그리고 한줄 정도는 엄마를 떠올리며 네모김밥을 싸 본다. (사실 정성이 두배라서 한 줄 이상은 쌀 수 없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네모김밥을 사진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 나 김밥쌌어!!! 엄마가 해주던 네모김밥!!”
엄마의 레시피를 몇 년간 꼬다리 먹으며 옆에서 지켜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알게 된 그 네모김밥의 비법. 그 네모김밥을 사실 엄마에게는 한번도 싸주지 못했다. ‘연애할 때 남편에겐 그렇게 싸줬었는데,,,’ 나는 역시 나쁜 딸이다.
사진을 보고 난 엄마의 대답은 항상 비슷하다.
"잘 쌌네,, '맛있겠네..."
"엄마도 나중에 싸줄게..~~"
나는 오늘도 지키지도 못할 말을 엄마에게 했다. 다시 김밥말기 현실로 돌아오자.
해는 밝아 오는데, 난 단 1분도 쉬지 못했는데, 왜 아직도 10줄 밖에 안 되지? 3단 도시락은 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인가. 다음에는 2단으로 아니 1단으로 준비해야 겠다. 여튼, 과일과 반찬으로 대충 3단을 채워넣고 도시락 뚜껑을 닫는 순간! 장렬히...목숨을... 아니 이제 숨가쁘게 출근 준비를 해야한다. 나는 퇴근이 아니다. 출근이다. 아침 해가 밝았는데 나는 왜 퇴근길 같은 몸과 마음의 피로를 느끼는지..
‘그래도 오늘 아침은 안차려도 된다. 김밥이 있으니까.’
(유주얼 서스펙트 급,, 반전이라면... 오늘 소풍가는 사람은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나의 육아 동지이자 초등교사인 남편이라는 점...김영란법 덕에 교사 도시락은 교사 스스로 ^^ 오늘을 연습하여 우리 아이들 소풍갈 때도 싸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