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실패 경험.

어린이집 체육대회의 단상. 아니 구구절절한 이야기.

by 국콩

육아 워킹맘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1. 월급날..(이 맛에 일하는 거 아입니꺼~~~~.. 전라도 분이 왠 경상도 사투리..)
2. 금요일 저녁..(일요일은 싫어요. 다음날 출근하니까요. 토요일 오후부터 우울해져요..)

황금 같은 나의 주말에 잡힌 어린이집 체육대회. 김영란 법 말고, 이런거 없애는 법은 없나요?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주말에는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여할까 말까 고민했다. 두 아이 모두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별일 없이 노는 데 안가기도 참 뭐해서 그냥 가기로 했다. 체육대회 한다고, 애미 맘도 모르고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두 아이들은 무척 신나 보였다. 나도 발바닥에서 부터 에너지를 끌어 모아 본다.


'캬,,바람 좋고, 햇볕 좋고....미세 먼지 없어 더 좋고,,,'

'이런 좋은 날 어린이집 체육대회라니..'

'...좋으냐?...'

너희들이 좋다면 엄마도 좋다. 아니 좋은 거다. 언제부턴가, 모든 외출 장소와 목적과 패턴이 아이들 중심으로 맞춰 지면서...아이들이 좋으면 나도 좋은 게 되버렸다. 식당도 되도록 불 없는 곳으로, 아이 의자 있는 곳으로, 놀이 공간이 마련되있으면 금상첨화이고.

매운 음식만 있는 곳은 못가요. 날 것만 파는 곳도 못가요. 외출 목적은 오직 애들이 즐겁게 놀고 시간보내는 것 이다.


'너희들이 신나게 뛰어 놀고, 즐겁게 웃고, 재미지게 하루 보내면 엄마도 왠지 기분 좋아...그거면 되지뭐.'

그렇게 체육대회 현장에서 오전을 보내고 마지막 계주만 남겨두었다. 평상시에도 바닥에서 항상 5센티미터 떠 있는 아들이었다. 운동장에서 그렇게 뛰고, 또 뛰고, 또 뛰어도.. 뛰고 있는.... 그래 넌 아들....그런 아들이었다. 챔(아들)은 달리기 한다고, 신나서 모자도 돗자리에 벗어두고, 뙤약볕으로 뛰쳐 나갔다.


그.런.데!!!!

"계주는 각 반에 대표선수만 뜁니다.."


청천벽력같은 방송소리가 들려왔다.


"챔, 어제 달리기 시합했어?"
"어"
"누가 1등했어?"
"ㅇㅇ 이가.."
"대표 선수들만 뛴대.. (너,,뛰어나갈 필요 없었어...)그니까 열심히 뛰었어야지...에구.."

달리기 하기만을 어제부터 기다린 챔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6살짜리가 그 달리기가 대표를 뽑기 위한, 엄청나게 중요한 예선전이었는지 알리가 없었다.)

아니. 고백하건데, 사실은 내가 더 실망 한 것 같다.

'애들 몇명이나 왔다고. 부모 달리기 그 까잇거. 안하면 그만이지. 부모 달리기 안하고 애들 다 뛰게 해주지.
쪼꼬만 애들, 대표만 뛰게하는 건 뭐람?'
갑자기 화가 났다. 체육대회 끝나고 선생님께 말씀 드리려다 꾸욱... 참았다.


집에 와서 계속 실망해 있는 챔을 보니,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뭐, 별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속상한지..
나 엄마 맞아???' 왜 이렇게 쪼잔하고, 추접스러운 마음이 들까? 앞으로 겪을 수많은 실패가 있을 텐데...뭐, 겨우 이거 가지고 이렇게 속이 상하지???

아직도,,, 나는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중근 선생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목숨 구걸하지 말라고.


나는 뭐 아들이 달리기 못해서 실망한 거 가지고 이렇게 속이 상하나 싶었다. 다리 길이나 기럭지로 봤을 때 내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계주 대표로 뽑힐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앞으로 다가올 체육대회마다 나는 이런 추접스러운 감정의 나 자신을 대해야 하나 싶었다. 이런 내 모습에 화도 나고 약간의 분노도 느꼈다. 하지만 속상하고 서운한 것이 현실이었다.

조금,, 변명을 해 보자면..

첫째 챔을 낳고, 이틀정도 되었을까?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숨소리가 이상하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그 때부터 나는 이미 산후조리는 개나 주고, 핸드폰을 붙잡고 온갖 검색을 통해 걱정과 눈물로 밤을 지샜다. 그리고 태어난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황달수치가 너무 높아져, 큰 종합병원에 입원시키게 되었다. 입원기간동안 황달치료와 함께 심장초음파 검사를 했다. 심장에 작은 구멍이 2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다행히 수술할 위치는 아니니 성장에 이상이 없다면 몇개월에 한번씩 와서 검사를 하며 추이를 살펴보자고 했다. 하지만 부모마음이 뭐 그런가.. 항상 걱정과 불안에 전전긍긍하며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황홀했지만 이미 나는 걱정이 많고 예민한 부모가 되었다.(아니,, 엄마들은 아이들을 키우면 다 예민해 지는 것같다. ) 나는 아이의 작은 뒤척임에도 잠을 깼다. 처녀시절에는 잘때, 업어가도 모르고 자던 사람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친정엄마는 늘 놀라워했다. 아니 안쓰러워했다. 아이를 다독이고 자느라 두돌까지 푹 자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육아 초반에는 이불도 덮지 않고, 잤다. 이불을 덮고 자면 푹 잠이 들어서 아이를 위해 중간중간 깨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챔은 잘 자랐다. 백일쯤 다시 심장초음파를 했을 때 둘 중 하나의 구멍은 막혔었다.(말이 간단한 심장초음파지 대학병원을 가본 사람은 알것이다. 몇시간 예약에, 기다림에,,, 특히 아기의 심장초음파는 잠자는 약을 먹여야 했기 때문에 보통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하며, 비염으로 감기를 달고 살았다. 새벽에는 기침, 그리고 잦은 코피..코피 자국이 없는 이불이 없을 정도이다. 챔을 3살에 어린이집에 보내고 복직한 그해 하반기가 내 직장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단언한다. 아이가 아프다고, 열난다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면 그때부터는 머릿속에 모기 한마리가 계속 날라다니는 기분이었다. 집중할 수 없었고 정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눈물나는 그 시절...

그렇게 잘 크고 있다고 믿고 있던 4살. 감기가 잘 낫지 않아 유명한 소아과에 가보니 감기와는 별개로 귀에 진주종이 있는 것 같으니 얼른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니 수술을 해서 제거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전신마취..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요.. 4살짜리 쪼그만 우리 아들을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니...'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수술날짜를 정하고 돌아오는 그 날 저녁.. 침대가 다 젖도록 울었다. 그리고, 다시는 울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육아를 거치면서 나는 첫째 챔군이 하는 말에 예민하게 걱정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그와는 정반대인 둘째 록은 물만 먹어도 살이 찌며, 포동포동 둥글둥글하게 잘 컸다. 우리 친정엄마는 나더러 첫째 챔만 챙긴다며 뭐라 할 정도였다. 사실 뭐 그런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챔이 한마디 하면 더 신경이 많이 쓰이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실이다. 첫째라서 그런 것 같다. 아니면 첫 아이로서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인해 서툴었던 나 때문일 수도 있다. (첫째는 눈물, 콧물, 웃음, 땀 다 묻은 첫 월급이라면 둘째는 바라보기만 해도 그저 웃음이 절로 나오는 보너스 같은 느낌이랄까.)

.....너무 긴 변명이었네...

그래서 여하튼 첫째 챔이 실망하는 모습이 더 속상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결론은 우리 아들이 또는 딸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내 아이가 보통의 아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시간. 내 아이가 수없이 많은 실패와 넘어짐을 반복할 거라는 것.. 그것을 동요없이 지켜보고 묵묵히 마음속으로 응원해 줄 수 있는 근육이 엄마에게도 필요하다. 그것을 만드는 데는 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잖니..
너희들을 키우면서 처음 해 보고, 느껴보는 것이 많아서
너무 서툴다.
미안...
엄마도 내 자신이 너무 창피해.
엄마도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
미안....

그래! 다음에는 쿨하게 넘길거야! 네가 일등이 아니어도 엄마 마음속엔 이미 일등이니까. 네가 실패할수록 너와 나의 사랑은 더 단단해 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네가 일어날 때 옆에서 늘 응원할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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