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쉐프가 말아주는 세계정세 스파게티 : 순한맛 두번째
이 글은 '세계정세 스파게티 : 보호무역 편' 2편입니다.
프롤로그부터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프롤로그 : https://brunch.co.kr/@eb690529fcce49a/9
▶1편 : https://brunch.co.kr/@eb690529fcce49a/8
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게 되는걸까?
세계는 늘 넓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주 좁아진다.
내가 어렸을땐, 교과서에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지구촌, 마샬 맥루한이 처음 사용한 이 단어는 지구가 마을처럼 작아졌다는 의미였다
의미만 보자면 지구가 가까워 진다는 희망의 단어에 가까웠다.
통신매체가 발달하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된 세상이
마을처럼 작아진 것과 같다 의미다.
그런데 지금은 이 지구촌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마샬 맥루한은 지구촌을 지구 전체가 마을이 된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했겠지만
지금은 세계가 다시 세력권으로 갈라지며 곳곳에 ‘지구촌락(村落)’이 생겨나고 있다.
세계 전체가 하나의 지구촌이 된 것이 아니라, 작은 마을들이 여러 개 생겨나는 모습이다.
삼국지를 좋아한다면 군웅할거라는 표현을 기억할 것이다.
천자의 힘이 약해지면 지방의 유력자들이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고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난다.
중국의 춘추시대가 전국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이나,
일본의 전국시대도 똑같은 패턴이다.
모이면 다시 흩어지고, 흩어지면 또 부딪친다.
어쩌면 인간 사회의 속성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는 넓어졌다가도,
아니, 넓어진 것처럼 보였을 뿐, 다시 좁아진다.
새로운 대륙을 발견했을 때, 세계가 넓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 대륙을 둘러싼 전쟁이 터지고 세계는 다시 좁아졌다.
기술이 국경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패권의 핵심이 되는 순간 국경은 오히려 더 촘촘해진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도 비슷한 흐름이다.
자유무역의 시대가 열렸을 때
사람들은 세계가 한 식탁 위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모든 국가가 같은 시장에서, 같은 규칙으로 경쟁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파이를 키우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보통 보호주의는 약한 나라가 먼저 꺼내는 카드라고 오해하기 쉽다.
보호라는 단어가 가진 속성때문일 것이다.
식민지 개척시대부터 지금까지
보호주의를 가장 강력하게 실행해온 주체는 오히려 강대국이다.
미국이 갑자기
“반도체는 국경 안으로 들어와라”
“배터리는 중국을 통과하면 안 된다”
“화웨이는 금지다”
라고 외친 순간,
활짝 열렸던 세계 무역의 대문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중국 견제’가 아니다.
미국이 세계화의 시대를 주도했기 때문에
그 미국이 멈추면 세계화도 멈추는 것이다.
미국은 WTO에 중국을 끌어들이면
스스로 민주화의 길로 이행할 것으로 기대하며,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중국을 세계무역질서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중국은 민주화로 이행하지도 않았고, 되려 미국을 위협했다.
값싼 중국의 공산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미국의 제조업 기반은 흔들렸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중국의 탓만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미국은 예전에는 화장을 한 채 협상테이블에 앉아 빙긋이 웃으며 협박했지만
이제는 갑옷을 입고 칼을 빼들고 나타나 엄격, 근엄, 진지하게 속삭인다.
“이제 방 빼.”
우리는 세계화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과정이라고 배웠다.
강대국이 문을 열면
중간국, 개도국이 따라 들어오는 그림.
겉은 그래보였지만
실제흐름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미국이 멈추면 EU도 멈춘다.
중국이 장벽을 세우면 아세안도 따라 세운다.
한 나라에서 시작된 규제가 곧 주변국의 표준이 된다.
에너지 위기, 기후 위기, 지정학적 위험.
이 모든 것들이 뭉쳐져 세계는 지금
각자의 규칙으로 갈라지는 ‘규칙할거’,‘전국시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세계가 넓어지는 데는 한 세대 쯤 걸렸지만,
좁아지는데는 몇 년이면 충분하다.
이러한 파편화는 단순히 무역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생산 시스템을 ‘따로’ 만들게 하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같은 공장을 여러 번 짓는 비효율에 빠진다.
즉, 경제적 이익보다 '안보'를 우선하는 비용이 발생하고,
바로 그 순간,
이 비용은 곧 블록 간의 긴장으로 치환된다.
“숙명”
이 흐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숙명이라 할만하다.
한 나라가 보호주의를 선택하면
옆 나라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
무역이라는 건 짝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국이 장벽을 치면
뒤로 물러서든지
그보다 더 높은 벽을 세우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자유무역을 유지하는 것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문을 열어둘 수는 없다.
상대가 무기를 들고 덤비는데
나만 빈손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호주의는 전염병처럼 퍼진다.
하나의 결정이 주변으로 번지고,
그 주변이 다시 다른 주변으로 번진다.
세계는 이렇게 좁아진다.
시장은 좁아지고, 국경은 높아진다.
지금 벌어지는 움직임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미국 : 제조업을 다시 국경 안으로
EU : 전략산업 보호
일본 : 산업정책 부활
인도 : 자급 경제 선언
중국 : 자국 공급망 구축
한국 : 반도체법, 배터리법 대응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걷고 있다.
세계가 넓게 연결된 시대는 저물고
더 작은 ‘지구촌락’ 즉, 블록들로 분리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문제는, 좁아지는 세계는 단순히 불편한 세계가 아니다.
'위험한 세계다.'
세계가 좁아지면 단순히 무역이 줄어드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
좁아진 세계는 긴장이 높아진다.
긴장이 높아지면 오판이 늘어나고
오판은 역사의 멱살을 잡고 뒤틀린 방향으로 끌고간다.
1차 세계대전 직전에도
세계는 좁아지고 있었다.
식민지 경쟁이 격화되고
군사,외교 블록으로 갈라지면서 세계는 좁아졌고
선택지가 사라지는 그 순간, 전쟁은 터졌다.
‘선택지가 줄어들면 충돌이 강요된다.’
빌헬름2세가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키고
갑자기 독·러 재보장 조약 갱신을 거부하고
해군력을 증강시키자 영국이 전함 ‘드레드노트’로 반응했다.
러시아가 육군력을 증강하자 주변국이 또 다시 군비확장으로 반응하면서
상대가 무기를 드니, 나도 무기를 드는 선택을 사실상 강요받는 이 그림은
‘좁아진 세상의 줄어든 선택지’의 교과서다.
2차대전은 다를까?
대공황이 오자 미국은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발동하고
평균관세를 59.1%까지 끌어올렸다.
세계 각국은 보복 관세로 대응했다.
교역이 줄어들고, 서로의 경제적 의존도는 낮아졌다.
이렇게 갈라서기 시작하면
전쟁의 '가성비'가 달라진다.
서로의 경제가 깊게 얽혀있으면 (세계가 아직 넓은 상황)
잃을것이 많기 때문에 격렬한 대화 몇 마디로 끝난다.
하지만 공급망이 끊어지고,
교역과 투자가 줄어들어
잃을게 별로 없는 상황이되면 (세계가 좁아진 상황)
참지않는다.
굳이, 참을 이유가 없다.
2차대전 직전
수출길과 공급망이 막혀 먹고 살 선택지가 줄어든
독일과 일본은 결심했다.
차라리 전쟁으로 세계의 자원을 손에넣고
자급자족하겠다고.
(그대는 총력전을 원하는가?)
오늘날의 세계가 그와 동일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패턴만큼은 놀라우리만큼 유사하다.
국가들이 스스로의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세계는 넓어지는 방향에서
좁아지는 방향으로 확실히 방향을 틀었다.
미국 중심의 민주진영 공급망과
중국 러시아 중심의 권위주의 공급망으로 나뉜 것만 봐도 그렇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여기서 단어를 조금 정리하고 가야만 할 것 같다.
“좁아지는 세계”라는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있다.
좁아진다는 의미에는 세계화로 하나된것만 같았던 지구가
조각조각의 세력권으로 나뉜다는 의미도 있지만
무역구조가 단절되거나 편향되고
공급망이 위축되고
국가의 자립능력이 약해지고
전략 산업이 외부로 빠져나가고
결국 국가의 ‘선택지가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니까 이 좁아지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무슨일이 일어날까?
선택지가 줄어들면 국가는 흔들리고
흔들린 국가는 외부 충격 앞에서 방향을 잃는다.
선택지가 많으면, 평화를 지키는 선택도 가능하다.
그런데 선택지가 없으면, ‘강요’당한다.
최악의 경우, 전쟁 뿐이다.
세계가 좁아지면 자립능력이 있어야 버틴다.
그래서 미국은 스무트-홀리법을 발동해서
기반산업 보호를 위한 관세를 부과했다.
독일은 수출길이 막혀 산업유지가 어려워졌고
일본은 안그래도 자원이 부족한데, 미국의 금수조치 앞에서 실신 직전이었다.
선택지가 줄어들었고, 결국 줄어든 메뉴판 속,
최악의 메뉴 ‘전쟁’을 골라버렸다.
(이길거란 확신도 없었잖아?)
그럼 자립능력이라는게 무엇을 말하는 건가?
기반산업, 쉽게 말하면 제조업 산업이다.
세계가 자유무역을 통해 금전적 이문은 많이 남겼다.
그런데 어떤 나라는 자유 무역 때문에, 기반 산업이 위태로워졌다.
그래서 이 기반 산업, 제조업 기반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 제조업 기반이 왜 중요한지 궁금하지 않나?
“그 뭐 공장 몇 개 없으면, 공기도 맑아지고 좋지
IT, 금융업, 서비스업처럼 벌어 먹고 살 거 많은데
제조업이 그렇게 중요해?”
맞다. 중요하다.
제조업이 망가진 국가는, 구조적 취약성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도 매우 높은 확률로.
이런 제조업이 망가진 구조적 취약성이 어떻게 파국으로 이어지는지,
역사는 이미 한 번 극적으로 보여준 적이 있다.
그 나라는 1편에서 잠깐 언급했던 ‘해가지지 않는 나라 원조 맛집 스페인’이다.
스페인이 이 점에서는 선생님이다.
이미 우리는 예고편을 본 것이다.
“아니 스페인이 뭘 어쨌는데?”
이 질문을 다음편에서 이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