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아니지, 사건이라는 거창한 명사가 붙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단지 선물을 받았다. 선물일까? 그냥 사랑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욱 어울릴 것이다. 아니지, 이것이 사랑인가? 나는 욕심이라 본다. 엄마, 아빠의 일방적인, 그들만의 욕심이지 않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고향에서 주기적으로 먹을 것들을 보내준다. 저번엔 아빠가 고기와 귤을 보내줬었다. 이번엔 엄마가 순대를 보내줬었다. 내가 잘 먹고 다니길 바라는 마음에, 그들의 사랑이 담긴 선물이었을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감사한 일일까? 감사하다 표현해야 마땅한 일일 것이다. 거세당한 나의 감정을 뒤로하고, 나는 감사함을 표현해야만 했다.
감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짜증이 났다. 짜증이라 표현하기엔 보다 순한 감정이었긴 했지만, 짜증에 가까운 감정이 들었다. 그들은 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줬겠지만, 그것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내가 좋지 않았는데, 받는 이가 원하지도 않았던 것인데, 왜 나는 원하지도 않은 선물을 받고, 마음에도 없는 감사함을 표현해야만 하는 것인가.
아빠는 주기적으로 귤을 보낸다. 나는 귤을 먹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귤 한 박스는, 단지 처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악성재고일 뿐이다. 당근에도 팔아봤다. 주변에도 나눠줬다. 그럼에도 계속 늘어난다. 짜증이 난다.
귤이 오면, 큰누나는 항상 아빠에게 감사의 전화를 주라고 한다. 큰누나 역시 귤 처리하는 데 골머리를 썩이는데 말이다. 나는 전혀 감사하지가 않다. 그러나 감사 인사를 하란다. 왜 있지도 않은 감정을 뱉어야 하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 이것이 예의인가? 예의는 대체 어떤 가치를 띌까? 가식은 그저 진실의 가치를 훼손하는 무언가일 것이다.
이번엔 엄마가 순대를 보냈다. 내가 막창 순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통화를 했고, 엄마가 유명한 순대집을 찾았다 한다. 순대를 보내주겠다 했지만, 거절을 했다. 내가 충분히 사 먹을 수 있는 것이고, 현재 냉동실에 공간이 없기도 했다. 한 3번 정도 거절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 번의 전화 속에서 말이다.
잠시 후에, 엄마가 카톡을 줬다. 순대 파는 링크를 보내준 것이다. ‘여기 어때?’라는 식의 연락이었다.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답을 못했다. 10분 뒤였나? 순대를 보냈다는 카톡이 왔다. 짜증이 올라왔다.
여러 번 거절을 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나는 진실로 필요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내 의견을 무시하고 보냈다. 너무나 짜증이 났다. 당장 냉장고에 자리가 없었다.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 또 내 에너지를 써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내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나는 거절의 말을 자주 한다. 무언갈 보내준다 할 때마다, 나는 알아서 먹을 수 있다는 식으로, 자주 거절을 한다. 필요할 때는 수락을 한다. 때문에 내가 거절한다는 것은, 정말로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당최 듣지를 않는다. 이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대체 누구를 위한 선물이란 말인가. 나는 고맙지가 않다. 너무나 고맙지가 않다.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으면, 그들은 서운해한다. 왜 감사의 말이 없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들은 여전히 내 말을, 내 감정을 고려하지를 않는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배부른 소리를 하네’라는 식의 말을 나에게 뱉을 것이다. 이런 식의 상상이 나를 짜증 나게 한다. 그들은 내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선물을 받으면 응당 감사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반응만을 하라는 식의 지적을 할 것이다.
짜증 난다. 그들은 감정이 거세된, 자아란게 당최 없는 자들일 것이다. 입력이 들어오면, 거기에 상응하는 결과만을 도출해 대는, 노예 같은 자들일 것이다. 진실함이 없는, 예의라는 꾸며진 말로 텅 빈 내면을 채울 것이다. 그러니 자아가 들어설 틈이 없을 것이다. 내가 욕을 끊은 것에 대해 그들은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란 자격은 타고나는 것인가? 취득해야 하는 것인가? 타고남이라면, 그런 모습을 어떻게 인간이라 정의할 수 있는가?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기계일 뿐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노예일 뿐이다. 이 주제로 나중에 자세히 글을 써야겠다. 나는 그들이 싫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