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모임에서 저는, ‘타인에게 부정을 투입시켜 줘야 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에 대해 글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로 적어보려 합니다. 우선 실명을 거론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든 이름은 기호로 대체하겠습니다.
A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에 의해 상처를 받은 사람의 글을 보며 이런 식의 말을 남겼습니다. ‘본인이 잘못이 아니다. 운이 안 좋았다. 상황이 안 따랐을 뿐, 본인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문장에 대한 거부감이 꽤나 큽니다. 나아가, 이러한 문장은 타인에게 진정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까지 있습니다. 저는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부정을 해줘야 하며, 억지 긍정은 오히려 사람을 더욱 망가뜨린다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B라는 분이 있습니다. B는 타인을 배제한 대화만을 합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뱉고, 본인이 원하는 주제만을 다룹니다. B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걸 멀리서 지켜보면, 항상 B만이 말을 뱉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B를 피했습니다.
어느 날은, C가 B의 곁에 남아 계속 대화를 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왜 B 옆에 남아 대화를 들어줬냐 물어봤습니다. C는 그냥 처음 뵀던 분이고, 본인까지 떠나면 B는 혼자니까, 연민의 감정으로 대화를 들어줬다 답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문제라 봅니다. C는 B의 타인을 배제한 대화에 긍정을 해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B는 본인의 그러한 점을 자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B 곁에 남아 대화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B는 계속해서 혼자만이 말하는 대화를 지속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과연 그 누구도 B의 대화를 들어주지 않았더라면, B는 계속해서 혼자만이 하는 대화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C는 예의상, 혹은 휴머니즘적인, B를 위한 마음으로 곁에 남아줬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C가 오히려 B를 더욱 망가뜨렸다 생각합니다. B의 그러한 모습을 긍정해 주는 사람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B는 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모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6명이 모여 있던 자리에서, A와 다른 분이 개인적 사담 수준의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4명은 가만히 멀뚱멀뚱, 대화에 끼지 못한 채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D가 나타납니다. D가 A에게, ‘단체석에서 할 말과, 개인적 사담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는 지적을 해줬습니다. A는 곧바로 시인했고, 본인의 실수를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부정을 투입시키는 것입니다. 본인의 문제점을 스스로 자각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심지어 그러한 문제점을 주위에서 긍정만 해준다면, 평생 모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문제점은, 타인의 지적을 통한다면 보다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부정의 가치입니다.
그렇다면, 이 긍정은 대체 무엇일까요? 정말로 휴머니즘적인, 그 사람을 위한 긍정일까요? 과연 이것을 선의로 볼 수 있을까요? C와 D의 차이점은, 긍정과 부정일 것입니다. C의 긍정은, B를 더욱 망가뜨렸을 것입니다. D의 부정은, A가 자각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봤을 땐, D가 더욱 휴머니즘 적이며,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 생각합니다.
본론으로 돌아와, A가 남긴 ‘본인의 잘못이 아닌, 운이 안 따랐을 뿐’이라는 식의 문장은, 저는 위험하다 봅니다. 물론 정확히 누구의 문제인지는 당장은 알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 정말로 상황이 안 따랐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잘못이 당사자에게 있다면? 그럴 때의 상황의 탓은, 오히려 악으로 치닫게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긍정의 힘을 당최 모르겠습니다. 듣기 좋은, 달콤한 언행만으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휴머니즘을 외치는 것이라면, 제가 오히려 더욱 그들을 진심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한, 타인에게 부정을 투입시켜야 한다는 말의 속뜻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