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시라

해피 30!

by 한운후



PM 11:22


방 안에서 유일한 빛을 내고 있는 협탁의 램프 아래로 캡슐 한 개, 물이 반쯤 차있는 유리잔이 놓여있었다. 엄마가 헐레벌떡 그녀의 방에서 나왔고, 모호한 미소와 함께 뭔가를 얘기했다. 그리고 조용히 껴안았다. 문이 닫히고, 면 잠옷이 스치는 소리가 방 안의 모든 면에 부딪쳐 되돌아왔다. 아희는 유리잔 옆에 선물로 받은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시계, 안대, 알약. 억센 강물 같은 시간이 그녀에게 쓸려와 남긴 잔여물들이었다. 하루 끝에 남은 전부였다.

그녀는 알약을 집었고, 조그맣게 입을 벌렸다. 시선은 빛이 닿지 못한, 옷장 옆 컴컴한 공간에 머물렀다. 손이 허공에 멈춰있는 동안 혀가 바싹 말라갔다. 곧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을 눈앞에 그려보니 코 끝과 이마 위로 뜨거운 구름이 출렁이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귓가를 지나 목 옆으로 흘러내렸을 때 가볍고 따듯한 뭔가가 그녀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희는 급히 두 발을 침대 위로 올렸다. 그녀가 눈가를 닦으며 아무리 방 안을 구석구석 살펴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알약을 도로 협탁에 울려두고 램프의 스위치를 껐다. 방금까지 눈 쌓인 벌판 가운데 있던 것처럼 전부 새하얗게 보였다.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자 그녀는 어깨를 움츠린 채 베개에 파묻혔다. 밝았던 잔상은 테두리부터 중앙까지 검은 잉크로 젖어들었고, 결국 어둠만 남았다. 존재를 애원하듯 크게 울리는 초침 소리가 그녀를 재촉했다. 뭔가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데 아희의 발에 차이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다. 그녀가 고요 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이어가는 동안 모든 게 다시 밝아지고 있었다. 찌푸린 눈으로 길을 잃지 않으려 했고, 끔찍하게 훼손된 붉은 형체들을 보고도 놀라지 않도록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희는 숨을 들이마시고 고갤 들었다. 모든 시간을 기억할 것처럼 광활하고 새파란 하늘에 노란 태양이 떠있었다. 눈에 담기는 것들이 상상과 많이 달랐다.


“아희. 예쁜 이름이네요.”


무리 지어 자란 들꽃들 중 하나가 그녀의 복사뼈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아희는 자신에게 잎사귀를 뻗은 꽃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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