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30!
그녀의 시누이가 출입문의 크림색 대리석 문틀에 한쪽 어깨를 기대고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미국과의 시차를 이겨낸 임산부의 자랑스런 미소였다. 뒤엔 팔짱을 낀 그녀의 오빠, 부드러운 하얀 수건을 들고 있는 아빠, 그리고 두 손을 가지런히 아랫배로 모은 채 가슴 미어진 표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엄마가 서있었다. 그들은 비에 쫄딱 젖은 몸으로 도착한 아희를 향해 각자 할 말을 준비한 듯 바쁘게 입술을 움직였다. 다져지고 채 썰린 단어들이 가족들의 입에서 한 덩이씩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만화 속에서 망치를 맞은 캐릭터의 머리를 맴도는 노란색 별들을 떠올렸다.
딸이 집안에 한 발을 디디기도 전에 아빠는 이미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손을 얹으라는 뜻으로 자신의 어깨를 톡톡 쳤다. 뿐만 아니라 직접 손으로 딸의 창백한 발에 붙은 찢어진 나뭇잎 조각과 자잘한 찌꺼기들을 떼어내는 정성을 선보였고, 하얀 수건으로 구정물과 검은 먼지들을 다정하게 닦아냈다. 가방을 낚아챈 건 엄마였다. 그녀는 물에서 방금 건진 미역처럼 축축한 린넨을 가방에서 꺼내며 의아한 표정으로 어깰 으쓱였다. 엄마는 표정이 바람 빠진 튜브처럼 일그러졌고, 질타하는 눈빛으로 애정의 말들을 쏟아냈다. 말을 하는 엄마의 얼굴에 미세한 주름과 움직임들이 일어났다. 아희는 한 글자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총알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따스한 물줄기가 아희의 어깨를 타고 허리로 흘러내렸다. 하루의 잔여물들이 그녀의 피부 위에 조금도 씻겨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른 몸 부위는 차가웠다. 그녀가 천천히 고갤 들자 물줄기는 방향을 바꿔 가슴팍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살을 물어뜯는 온기가 고통을 배와 허벅지로 몰아냈다. 거울에 내려앉은 부연 수증기는 천장의 살구색 조명을 흉내 내어 두꺼운 구름처럼 비밀스러워 보였다. 표면에 도는 고운 광택 탓에 거울은 아무것도 제대로 비추지 못했다. 화장실의 다른 벽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런 거울 속에 밖으로 나가길 두려워하는 여자가 숨어있었다. 아희는 그녀가 실제로, 가능한 오랫동안 존재하길 바랐다.
가슴속에서 화끈거리는 고통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그녀는 수증기에 둘러싸여 주황과 빨강이 연기처럼 어우러지는 환각을 경험했다. 검은색에 가까운 어둠이 그녀의 코를 통해 허파까지 찔러 들었고, 주변이 도는 듯한 느낌에 균형을 잡기도 힘들었다. 숨 쉬기가 답답했던 아희는 목 위로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 이를 때까지 거울에 이마를 얹었다. 그러다 눈을 감고, 턱을 들어 올린 채 한참을 있자 눈가에 호수가 만들어졌다. 고여있던 물은 이미 선명한 붉은 기가 맴돌던 그녀의 눈꺼풀을 더듬고는 아래로 추락했다. 이제 그녀의 눈물은 이제 세상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생일 축-하 합니다."
그녀는 눈을 떴다. 네모난 쉬폰 케이크에 꽂힌 세 개의 초 중 하나가 유난히 빠르게 녹으며 휘어져 있었다.
"아희야, 빨리. 안 불 거야?"
그녀는 마주 잡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서둘러." 엄마가 케이크를 가리키고는 눈을 부릅 떴다.
아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유리창을 뚫고 거실 바닥에 쏟아진 도시의 빛을 제외하고 동굴처럼 캄캄했다. 화장실은 불 꺼진 지 오래인 것처럼 문 위로 비스듬한 나뭇잎 모양의 검은 그늘이 져있었다. 드레스룸 앞 유리 장식장에 그녀의 시선이 멈췄다. 그녀의 손글씨가 적혀있는 종이 한 장이 테두리에 손톱만큼의 여백도 남기지 않은, 딱 맞는 액자에 담겨 있었다.
"어디서 들었는데 초가 다 녹을 때까지 기도가 안 끝나면, 네가 싫어하는 사람이 그 소원을 이루게 된데."
오빠가 장난스레 말했다.
"자기야." 시누이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채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다시 한 손을 불룩한 배에 올렸다. "좋은 건강을 위해 기도도 좋고, 아니면 사랑 어때요?"
아희는 촛불에 다가가 짧게 불었다.
식탁은 광야처럼 드넓고, 대화는 바람처럼 오갔다. 하루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길이 없던 그녀는 숟가락질 세 번 만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발목이 의자 다리에 묶인 건 아니었지만, 대화를 끊고 일어날 수가 없어 그저 가족들을 따라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의 오빠는 미국에서 벌어진 한 법정 사건을 절제된 손짓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새벽 시간대에 오직 부유한 지역만 찾아다니며 고의적 소음 공해를 일으켜온 어느 비영리단체가 법원에서 패소했고, 되려 부자들에게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지불할 처지에 놓인 이야기였다.
"그렇게 쉬운 방법으로 빈부격차 문제가 사라질 수 있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진작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왔겠죠. 안 그래요?"
그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곤, 말을 덧붙였다.
"무슨, 가난한 이들만 증발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입가에 묻은 자잘한 녹색 기름방울들은 입술이 씰룩일 때마다 다채로운 무지개의 빛을 띠었다.
모서리가 둥근 투명한 알루미늄 케이스엔 1년 치 수면제가 들어있었다. 아직 개봉된 적 없는 상자의 입구엔 홀로그램 빗금이 새겨진 검은색 띠가 둘러져 있었고, 위엔 양각의 이탤릭체로 ‘Rock-sleep’이라 적혀 있었다. '돌 같은 잠.' 그녀는 다른 경우를 고려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웃긴 이름이라 생각했다.
주방 찬장에 마른 접시를 꽂던 시누이가 아희와 눈을 마주치자 손짓을 했다. 그녀는 손에 쥔 얇은 선물 상자를 머리 위로 조심스레 흔들더니 테라스를 가리켰다.
그녀는 납작한 선물상자를 아희에게 내밀었고, 다른 손으로 둥근 배를 살살 문질렀다.
"안 열어볼 거예요?"
상자가 열린 순간 밝은 황갈색의 안대의 표면에서 옅은 윤기가 흘렀다.
"축하해요, 아가씨. 항상 기억해요. 지금이 가장 중요하고, 우리 가족은 언제나 함께라는 걸."
그녀는 목만 앞으로 내민 채 아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아희는 기쁨이 기억나지 않는 듯, 호의에 걸맞은 밝은 표정을 만들 수 없었다. 작년 생일은 말할 것도 없이, 이제까지 그녀의 모든 생일들은 일어난 적 없는 동화 같았다.
"비쿠냐 울로 만들어져서 잠들 때 눈을 정말 따듯하게 해 줄 거예요. 준희 씨랑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에 백화점에서 제가 직접 골랐어요."
"고마워요, 미정언니. 정말. 언니한테 신혼여행 얘기도 듣고 싶었는데... 어땠어요?"
"지금은 아드리아 해에 대한 기억밖에 없어요."
"괜찮았어요? 아침 산책도 고생이었을 텐데."
"앉아만 있어도 좋았어요. 똑같은 풍경을 며칠이고 계속 봐도 예쁘길래. 그리고 준희 씨가 고생했지. 그라도에 머물 때 남들이 윈드서핑 하는 걸 보기만 하느라 몸이 근질거렸을 텐데."
아희는 보드라운 안대의 끈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그랬구나."
미정이 침묵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이것 좀 봐요."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휴대전화 화면에 분홍빛 바다, 테두리에 금색 핏줄 같은 빛이 맺혀있는 초저녁 숲, 아드리아해의 정경이 녹아든 하얀 동네의 사진들이 스쳐갔다.
"여기부터는 다시 프랑스 리옹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찍은 것들이에요. 예쁘지 않아요? 떼제베가 워낙 빨랐는데, 바깥 멀리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창문으로 드러난 포도원 위로 노을의 물감이 쏟아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건 우리가 먹었던 식사."
초록 이파리들이 올라간 1인용 피자 뒤로, 얇게 썬 오이와 잠봉이 접시 위에 겹겹이 쌓인 꽃잎처럼 나선을 그리며 깔려있었다. 승무원이 찍어준 듯 보이는 두 사람의 키스 사진이 나타난 순간, 아희는 순간 사진의 한 구석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전과 현대적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는 프리미엄 2층 목재 객실에서 보기 드문 뭔가가 이었다. 미정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휴대폰을 홱 잡아챘다.
"언니, 잠깐만. 마지막 사진 다시 보여줄 수 있어요?"
"이거를?"
아희는 사진의 한 부분을 확대시켰다. 끝 자리의 차양막 하나가 곧바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유난히 구겨지고, 일부가 맹수의 발톱에 뜯어져 나간 듯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길게 뺀 채 사진을 본 미정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거 기억난다. 너무 웃겼어요. 저 앞쪽 좌석에 계셨던 어떤 할아버지가 열차 직원들에게 불만스럽게 뭔가를 소리 질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머물렀던 호텔방에 깜빡하고 알약을 두고 오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준희 씨가 자기 것을 하나 권했더니 고맙다면서 두 손으로 그의 팔을 막 주물러 주셨죠. 아마 우리가 같은 칸에 없었더라면, 분명 커튼을 찢을 뿐만 아니라 창문도 깨부수려 하셨을 텐데."
아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갤 흔들었다.
미정은 서둘러 다른 사진을 찾았다. "커튼에 이런 문구가 쓰여있어요. 아마도 열차의 모든 칸마다 똑같았는데, 여기 있다."
한 사진 속에서 아이처럼 웃는 미정과 준희가 분홍빛 잇몸을 넓게 드러내고 있었다. 행복에 겨운 둘의 뒤로 창문 차양막이 완전히 내려져 있었고, 그들의 머리 위에 작고 검은 글씨가 적혀있었다.
미정이 인중을 길게 늘이며 새끼손가락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두 눈동자만 위로 올린 그녀는 웃음기가 다 가시지 않은 듯 어깨를 들썩였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아희와 눈을 마주친 순간, 달콤한 꿈에서 억지로 끌려 나온 사람처럼 웃음을 걷어냈다.
"무슨 뜻인데요?"
"벌써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아가씨도 남자친구 생기면 꼭 가봐요. 알겠죠?"
미정이 황급히 휴대전화를 등 뒤로 가져갔다. 그리고 치마를 들어 올린 채 테라스 문턱을 넘으려던 찰나 아희는 뭔가에 이끌린 듯 그녀의 팔을 잡았다. 턱에 한쪽 발을 올린 미정은 황당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이래요? 그냥 오래된 농담 같은 말이에요."
"무슨 뜻인지 알려 줄래요?"
"아가씨, 아파요. 이거 놔주세요."
"제발." 아희는 알 수 없는 창피함에 복종한 듯 고갤 숙였지만,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미정의 팔을 더욱 강하게 잡아당겼다.
미정이 입을 꽉 다문 채 거칠게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부릅뜬 눈으로 안간힘을 다해 아희의 손을 떨쳐냈다. 그녀는 아희에게 몇 걸음 떨어지더니 주먹을 쥐었다 피길 반복했다. 자신의 목부터 얼굴까지 전보다 붉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미쳤어요? 내가 미끄러졌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보세요."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땅만 내려다보는 아희를 바라보며 정수리부터 머리카락을 길게 쓸어내렸다. 곡선형 다리의 나무 탁자 아래에 펼쳐진 상자와 안대가 떨어져 있었다. 미정은 짧은 신음을 내며 허릴 숙였고, 떨리는 두 손가락으로 겨우 안대의 끈을 집어 들었다.
"맘껏 꿈을 꾸시라는 뜻이에요. 별거 아니라 했잖아요. 애처럼, 정말." 그녀는 선물에 묻은 회색의 먼지 덩어리들을 털어내며 맥 빠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가씨도 이제 알만큼 알지 않아요?"
테라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아빠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아희를 향해 생긋 웃었고, 다시 뒤돌아 섰다. 미정도 어느새 자신의 둥근 배를 감싸 안은 채 그들의 옆으로 다가가 상아색 조명 아래 놓인 한 조각의 종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작은 액자 속 그녀의 마지막 꿈 내용이 적힌 종이는 마치 100년 만에 수취인에게 도착한 편지나 긴장감이 팽팽했던 경매의 낙찰품인 것처럼 장식장의 맨 위칸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유리문 겉엔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내 꿈은 더러운 변기 안에 이빨이 빠지는 꿈이었는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의 오빠가 콧웃음을 쳤다.
"거기에 똥이 묻어 있었다고 하지 않았니? 그건 재물운이다, 아들아."
아빠가 액자를 노려보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도대체 우리 공주님은 어젯밤에 무슨 꿈을 꾼 걸까."
꿈은 단 하나만 빼고 그녀의 기억에서 대부분 휘발된 지 오래였다. 거대 도시 한가운데서 그녀 혼자만 본 유성처럼, 그 기억은 꿈의 조각 이상의 의미였다. 아희는 선물 상자를 꽉 쥐고 실내정원으로 이어진 복도를 걸었다. 맵고 달달한 공기가 그녀의 눈을 시리게 했다. 약한 광택이 도는 흑단나무 콘솔에 그녀의 엄마가 늘 올려두곤 하는 계피 접시가 유난히 진한 향을 퍼뜨리고 있었다. 콘솔 밑 선반엔 여전히 흠뻑 젖어있는 가방이 힘없이 늘어져 있었고, 바닥으로 한 방울씩 떨어진 빗물들은 조그마한 웅덩이가 되어있었다.
아희는 어리석은 기대를 품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