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한국 사회에서 이 문장은 거의 신화적 지위를 획득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실존적 태도의 상징으로, 이 말은 수많은 연설과 글에서 인용되었고, 교과서에 실렸으며, 졸업식과 입학식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이 말이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의 것이라고 확신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이다. 스피노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 오해의 진원지를 추적하면 놀라운 역사적 궤적이 드러난다. 이 문장의 최초 기록은 1944년 독일 개신교 목사 카를 로츠의 교회 회보에 등장한다. 로츠는 이 말을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했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나치 독일이 패망을 향해 치닫던 그 암울한 시기에, 이 문장은 절망에 빠진 독일 국민들에게 재건의 희망을 주는 메시지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도시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거리, 그리고 다가오는 파국 앞에서 독일 사회는 이 말에 매달렸다. "루터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의 회복을 의미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루터의 방대한 저작 어디에도 이 문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루터 연구자들은 이 문장이 루터의 신학적 사고방식과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루터에게 세상의 종말은 신의 심판이자 구원의 완성이었으며, 그 앞에서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발상은 그의 종말론과 충돌한다. 따라서 이 말은 루터가 했을 법한 말을 누군가 창작했거나, 루터의 정신을 담아 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1944년이라는 시점이 중요하다. 전쟁의 끝이 보이고, 독일의 미래가 불투명한 그 순간에 이 문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떻게 스피노자의 것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가 스피노자를 받아들인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스피노자는 한국의 지성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신을 자연과 동일시하는 범신론, 감정을 이성으로 극복하려는 철학, 그리고 유대교 공동체로부터 파문당한 이단자의 삶. 이 모든 요소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철학을 수용하던 지식인들에게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식민지 경험과 분단, 군사독재를 겪으며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던 한국 사회에서 스피노자는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지혜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과나무 문장은 스피노자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결합했다. 스피노자는 렌즈를 갈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철학에 몰두했고, 폐결핵으로 44세에 요절했다. 가난하고 고독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그의 삶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태도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게다가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기하학적 질서로 세계를 설명하며, 운명애(amor fati)의 철학을 펼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필연성을 받아들이면서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이다. 사과나무 문장은 이 철학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듯 보였다.
문제는 이 연결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집단적 상상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스피노자와 사과나무의 결합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추적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1970~80년대 번역된 서구 철학 입문서들이나 교양서적에서 루터의 말로 소개되었던 이 문장이, 번역과 재인용 과정에서 스피노자에게 귀속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루터는 한국에서 종교적 인물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스피노자는 철학적 명언의 주인공으로 더 적합했을 것이다. 또한 스피노자라는 이름 자체가 가진 이국적 울림과 신비로움이 이 오해를 고착화하는 데 기여했을 수 있다.
이 오해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문화적 필요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빠른 근대화 과정에서 의미의 상실과 실존적 불안을 경험했다. 전쟁과 가난, 독재와 민주화 투쟁을 거치며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도 행동하는 것의 의미를 찾아야 했다. 사과나무 문장은 바로 그 필요에 응답했다. 그것은 철학적 깊이를 지닌 듯 보이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함을 가졌다. 내일이 어떻든 오늘 할 일을 하라는 메시지는 한국인들의 근면함과 불굴의 의지를 정당화하는 서사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그러나 이 오해를 바로잡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지식을 소비하고, 권위를 만들어내며, 의미를 구성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스피노자의 실제 철학을 들여다보면, 사과나무 문장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급진적인 사상이 드러난다.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을 동일시함으로써 초월적 신의 존재를 부정했고, 자유의지라는 환상을 깨뜨렸으며, 선악의 절대적 기준을 해체했다. 그의 철학은 위로나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라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냉정한 요구다.
『에티카』에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것은 "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명상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과나무 문장과 닮은 듯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과나무 문장은 종말 앞에서도 행동하는 의지를 강조하지만, 스피노자는 종말 자체를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필연성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지, 절망적 상황에서의 영웅적 행동이 아니다.
이 차이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이다. 사과나무 문장은 행동주의적이고 의지주의적이다. 그것은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포기하지 말라는 도덕적 격려다. 반면 스피노자의 철학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우리 본성에 맞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전자가 투쟁의 철학이라면 후자는 수용의 철학이다. 물론 스피노자의 수용은 체념이 아니라 능동적 이해를 통한 자유의 획득이지만, 그것은 사과나무를 심는 행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오래된 오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한 가지 접근은 이것을 단순히 잘못된 인용으로 치부하고 바로잡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하지 않은 말을 스피노자의 것으로 돌리는 것은 그의 철학에 대한 오독을 낳고, 더 나아가 스피노자를 단순한 격언의 제조자로 격하시킨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과나무 문장을 스피노자에게서 떼어내고, 그것이 루터의 것도 아니며, 1944년에 만들어진 익명의 창작물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접근도 가능하다. 이 오해 자체를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읽는 것이다. 왜 한국 사회는 이 문장을 스피노자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그것은 우리가 서구 철학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어떤 메시지를 필요로 했는지를 드러낸다. 사과나무 문장이 스피노자에게 귀속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스피노자로부터 듣고 싶었던 말이었고, 스피노자라는 이름이 그 말에 부여할 수 있는 권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누가 실제로 이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왜 우리가 이 말을 필요로 했고 그것을 특정한 인물에게 귀속시켰는가다. 오해는 때로 진실만큼이나 많은 것을 말해준다.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는 실재하지 않지만, 그것이 한국인들의 집단적 무의식에 심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 나무는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 문화적 진실로 존재한다.
결국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중의 교훈을 준다.
첫째, 권위에 의존한 지식의 위험성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유명한 인물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고, 출처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인용을 반복한다. 디지털 시대에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떠도는 명언들은 대부분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잘못 귀속되어 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와 오독이 만들어내는 생산적 가능성이다. 스피노자가 사과나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이제 스피노자의 실제 철학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동시에 왜 우리가 그런 오해를 만들어냈는지 성찰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사과나무를 심지 않았다. 그는 렌즈를 갈았고, 기하학적 질서로 윤리학을 구축했으며, 신을 자연과 동일시하는 대담한 철학을 펼쳤다. 그리고 그 철학은 사과나무 한 그루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복잡한 숲을 이룬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스피노자가 심지 않은 사과나무에서 눈을 돌려 그가 실제로 남긴 사유의 유산을 직면하는 것이다. 그것은 위로를 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세계를 이해하는 더 깊은 방법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절망 속에서 사과나무를 심는 일, 즉 우리의 지적 정직성을 지키며 사유를 계속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