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와 반 세기
굽어 가는 언덕길
가파른 경사 위에서
너를 만난다
한 세기가 넘도록 같은 자리를 지키고
타오르는 하늘을 향해 팔 벌리고 있는 너
반 세기 동안 너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해가 갈수록 햇볕은 뜨거운데
날이 갈수록 너의 가지는 늘고
이파리는 무겁구나
늘어난 이파리마다 더 많은 햇살을 품고
그럴수록 그림자는 길고 시원하다
어디까지 올라가야만 하는 건지
가뿐 숨을 내쉬며 지나온 길을 내려다볼 때
마침 굵은 빗방울이 내리고
너의 가지 밑에서 비를 피했을
빗방울만큼 많은 사람들을 헤아려본다
이 비가 그칠 때쯤 너의 발밑은 한 뼘 더 멀리 뻗어나가 있겠지
눈이 와도 비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너의 발밑
단단한 옹이가
내 손끝으로 전해진다
이마에 맺힌 비와 땀을 흙손으로 닦는다
너의 한 세기와 나의 반 세기가 만난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