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 써 보는 의사 Sep 04. 2024

가파른 언덕에서 만난 나무

한 세기와 반 세기



굽어 가는 언덕길

가파른 경사 위에서 

너를 만난다


한 세기가 넘도록 같은 자리를 지키고

타오르는 하늘을 향해 팔 벌리고 있는 너

반 세기 동안 너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해가 갈수록 햇볕은 뜨거운데

날이 갈수록 너의 가지는 늘고 

이파리는 무겁구나

늘어난 이파리마다 더 많은 햇살을 품고

그럴수록 그림자는 길고 시원하다


어디까지 올라가야만 하는 건지

가뿐 숨을 내쉬며 지나온 길을 내려다볼 때 

마침 굵은 빗방울이 내리고

너의 가지 밑에서 비를 피했을 

빗방울만큼 많은 사람들을 헤아려본다


이 비가 그칠 때쯤 너의 발밑은 한 뼘 더 멀리 뻗어나가 있겠지

눈이 와도 비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너의 발밑

단단한 옹이가 

내 손끝으로 전해진다


이마에 맺힌 비와 땀을 흙손으로 닦는다

너의 한 세기와 나의 반 세기가 만난 자리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흐르는 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