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니 시 곳간
빨간 신호등 ㅡ
휘날리는 눈발 속
겁먹어 풀죽은 차량들
거북이 되어 설설 기는데
그 위에 덩그러니 매달린
거만한 저 신호등
혼자 잘난 듯이 깜빡이고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파란 불 켜지고
화살표가 손짓을 하면
바로 좌회전
서둘러 빠져 나가야 한다
가물가물 시야는 흐려지고
눈발은 더욱 거세어져
굵은 눈송이 무성히 쏟아지는데
아, 충혈된 눈 부릅뜨듯
다시 켜진 빨간 정지 신호 두 개
커다란 눈 부라리며 준엄하게 말한다
건너오면 안 된다고
조금만 기다리다 오라고
인생에도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ㅡ 도 니
* 1집 '꿈을 찍는 사진쟁이' /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