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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도니 시 곳간

by 도니 소소당


고물 ㅡ


최소 18년 째 입고 있는 겨울 남방이 있다

에리가 해져 한번 뒤집어 바꿔 단 것 빼고는 아직도 멀쩡해 여전히 즐겨 입는다

오늘 가만히 보니 이제 소매도 닳기 시작했다


옷 하나를 18년씩 입고 있다는 건

내가 짠돌이거나 알뜰해서가 아니고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아무리 겨울에만 입는 옷이라 해도 자주 입으면 해지기 마련

옷이 온전하다는 건 옷이 많거나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니 옷 입을 일 별로 없다


옷 오래 입었다고 자랑으로 여겼는데

얼마나 소극적으로 살아왔는지를 되새겨보니

가뜩이나 작은 몸이 더 쪼그라든다


ㅡ 소소당


* 옷 뿐만 아니라 뭐든지 사면 오래 입고 오래 사용한다. 수시로 바꾸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20년 된 차를 애마이자 친구로 여기며 아낀다


입고 있는 옷들이 대개 10년이 넘었고. 오래된 것은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정이 든 것들을 잘 버리지 못하는 아주 나쁜 습관을 갖고 산다.


평생 좋은 것들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라 고급 인생은 절대 아닐 것이나 원래 수수하고 소박한 것들을 좋아해서 마음에 두고 살지 않는다. 화려하고 요란한 것은 멀리하고 늘 경계하며 삶을 꾸려 왔다.


사진도 시도 나를 닮아 있는 건 여간 고맙고 다행한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첫눈에 볼품은 없지만 뜯어보면 나름 볼만한 구석이 있다. 그럼 된 것이라 위안을 삼으며. 또 그럭저럭 넘어간다.


그렇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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