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정신과의 문을 열고 마음을 꺼내놓다.

제가 약을 먹어야 한다구요?

by ASTER

'정신과에 간다'는 것은

분명 '내과'나 '치과'에 가는 것과는 다르다.

같은 병원인데 왜 그 의미는 다른 것일까?



"카톡"


그날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왔을 때

현장에 함께 계시던 기획자 한 분이 개인 카톡을 보내셨다.


'ㅇㅇ정신의학과'


회사 근처의 어느 정신과 병원 링크였다.

바로 내 자리까지 직접 오셔서

아무래도 내 증상이 공황장애 같다고 하시며

병원 진료를 받아보는게 어떨지 조심스레 권하셨다.


기획자님 자신도 몇 년간 공황장애를 앓았으며

지금은 거의 완치하셨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초기 증상이 있을 때 되도록 빨리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는

정성어린 조언에

나는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모든 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당혹스러웠다.


심리상담도 받아본 적 없는데 갑자기 정신과라니

긴장해서 숨이 좀 안쉬어진 걸 가지고

괜히 일을 키우는 것은 아닐지

주변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었다.


'정신과에 간다'는 것은
분명 내과나 치과에 가는 것과는 다르다



그 때, 옆에 있는 동료도 힘을 보탰다.

최근의 힘든 일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 온 동료이기에

내가 심적으로 지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날 회의에서 보인 상황도 예사롭지 않으니

괜히 참지 말고 다녀오라며 용기를 주었다.


그날 저녁

못이기는 척 병원을 찾았다.


정신과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예약이 필요했지만, 마침 한 선생님께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고

심리검사지 같은 문진표를 작성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30~40분 정도 검사지를 모두 작성하고 드디어 담당 선생님을 만났다.


'젊고 스마트하며 따뜻한 이미지'


처음 만난 정신과 의사의 첫인상은

내 편견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드라마에서 보던 사무적인 모습의 의사들과는

다른 '현실 의사의 모습'에 일단 마음이 놓였다.


찾아온 것은 나인데

오히려 자신이 초대받은 손님처럼

선생님은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여러 질문들을 하셨다.

마음을 문을 열 수 있을 만큼 시간과 공을 들이셨다.


내가 최근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하고 있는 일의 과정들 어려움.

권태나 좌절의 순간.

내 의지와 관계없이 떠맡게 된 책임들.

그리고 질책.

괜찮다고 넘겨버린 감정들과 삼켰던 말들.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참고 지나간 순간들.

그리고,

그때의 내 진짜 마음은 뭐였는지 물을셨다.


도망치고 싶었어요
최대한 멀리


진료실에 있던 한시간여의 시간동안,

나는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들을 다시 보았다.

내가 그동안 자랑스럽게 여기던 것들이 무너지고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는 내가 보였다.

그 모습이 더없이 작고 안쓰러웠다.


사는 게 참 힘드네요.
꼭 드라마 미생 같아요.
그동안 참 많이 애쓰셨습니다.


순간 아득한 느낌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두었던 큰 둑이 무너져 내렸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나는 처음 본 선생님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그 날의 진단은

적응장애와 공황장애,

그리고 약간의 우울도 함께.

일단은 지금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불안과 긴장이 아져 있어

일을 쉬는 것이 어렵다면

당분간 약을 먹으면서 매주 상태를 지켜보자고 하셨다.


제가 약을 먹어야 한다구요?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약을 먹을 정도라니.

나는 이제 괜찮다고,

좀 울고 났더니 속이 시원하고

정말 아무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

위급한 순간 먹는 비상약까지 고분고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섰다.

이때까지도 나는

내가 병원을 괜히 찾은 것은 아닌지

이젠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며 오히려 나의 상태를 의심했다.



+@ 정신과는 처방전으로 외부의 약국이 아닌, 내부에서 자체 약물 처방을 한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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