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둥근 문의 저편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

by ASTER

문이 열리는 순간, 해인은 밝은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기,

둥근 감각의 세계가 그녀를 감쌌다.

초록안개숲의 흐릿한 경계선이 사라지고,

따뜻하고 단단한 공간이 펼쳐졌다.


이곳은 현실과 닮았지만, 분명히 달랐다.

사람들이 걷고, 말하고, 감정을 주고받는 일상이 이어지지만,

그 모든 움직임에는 분명한 곡선이 있었다.

명령과 판단 대신 흐름과 수용, 연결이 있었다.


해인은 처음 몇 걸음을 조심스레 내디뎠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움찔했지만, 이내 눈을 맞추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해인은 이제 자신도 감정을 감추지 않기로 했다.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해인은 망설이다가 아이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말을 걸지 않고, 같이 울었다.

아이는 놀란 듯 해인을 바라보다, 이내 눈물을 멈췄다.

울음에 울음으로 답하는 것.

해인은 그것이 이 세계의 방식임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둥근 세계의 하늘엔 별이 아닌,

감정의 파동들이 일렁였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하루 동안 사람들이 흘린 감정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해인은 그 아래 누워보았다.


감정은 나를 무너지게도 했지만,
결국 여기까지 데려왔어.


그리고 해인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세계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전 자신이 잊고 지운 감정들,

기억 너머에서 항상 기다리고 있던 ‘가능한 세계’였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이 아니라,

'여기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해인은 다시 한번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딘가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에 올 수 있는 또 다른 사람,

아직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누군가.


해인은 누운채로 멀리 펼쳐진 하늘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언제든 누군가를 맞이할 수 있도록.

둥근 곳으로 오는 사람을 위해.


[다음화 예고]


제13화. 「파편의 도시」


둥근 세계 역시 완전한 이상향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감정은 여전히 파편처럼 흩어지고, 사람들 사이엔 크고 작은 어긋남이 존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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