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돌고 돌아 전환점에 섰다고 느낄 때

모든 나를 끌어안기 (자기를 살리려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

by ASTER

위로를 구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위로를 제공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자기를 살리려고 하는 인간은
절대 죽지 않는다.


- 최진석 교수님의 강의중




<삶의 실력, 장자>, <건너가는 자> 등을 집필하신

서강대학교 철학과 최진석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모든 고민과 불안은 꾸준한 글쓰기와 오래 걷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씀이 특히 와 닿았다.


요즘 나도 계속 글을 쓰고 여기저기 새로운 곳을 찾아다닌다.

전에는 늘 같은 곳만 다녔는데,

이제는 다른 동네, 처음 가보는 곳,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본다.

그러면 나도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진행하는 일의 결과나 평가,

조직 내 나의 위치 등에 대한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나의 상태나 위치 '를 아는 것이 아닌

'나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전체의 일부로서가 아닌

그저 하나의 큰 전체로서

진짜 나를 바라보려고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가 진짜 되고싶은 것은 무엇인지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바라보고 고민하면서

지금이 어떤 전환점이라는

강한 직감이 든다.


최진석 교수님 강의를 들으며 기록한 노트를 여기 옮겨본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무엇을 꿈꾸어야할지 고민해보면서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불안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다.

내가 작아서 힘든 것이다.

불안을 품고, 가짜 위안을 얻으려 하지 말라.

생각과 지식으로 나를 확장하고

실력을 키워서 불안을 껴안고 나아가야 한다.


지식보다 지혜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혜로우려면 우선 지식을 갖추고

삶에 대한 포부와 야망이 있어야 한다.

즉, 실력을 닦아야 지혜도 생긴다.


경계선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깨어 있으라.

마치 '봄날의 얼음이 풀리듯이 하라.'

봄날의 얼음은 꽁꽁 언 상태의 얼음도

다 녹은 물도 아니다.

이 말은 '대립면의 상생'을 뜻한다.

다른 세상, 나와 다름에 대해서 열린 마음.

다른 것들과의 경계에서

항상 상생하는 자세를 지녀라.

유무상생(有無相生).


직감과 영감은 언제 오는가?

원하는 것이 매우 강렬할 때 찾아온다.

열망의 순간에 찾아온다.

욕구를 해소하는 차원의 삶이 아닌,

더 큰 것을, 더 높은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는 삶을 살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찾는다고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심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지는 것이다.

찾으려고만 하면 그것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위로를 구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위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자기를 살리려고 하는 인간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서울시청 정동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수궁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