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에 대하여 그동안 침묵 속에 살아온 우리나라는 국민의 대다수가 아직 그 진실을 모른다. 침묵과 교육 당국의 외면한 면도 없지 않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 문화 발전과 성장에 가장 중요한 기본적 보행이다.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고리이다. 기억의 계승을 위하여 이야기꾼이 되어보려 한다.
제주 4·3 평화공원은 4·3으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당시 제주도민의 처절했던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인권 공원이다.
4·3의 역사를 담는 그릇을 모티브로 디자인 한 기념관
기념관은 상설 전시실, 특별 전시실, 해원의 퐁낭, 대강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휴관일은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이다.
4·3 당시 피신처로 활용되었던 천연동굴을 모티브로 조성된 입구를 지나면
4·3에 대한 정명을 기다리며 비문을 새기지 못한 백비가 누워 있다.
처절했던 피난 생활
학살 피해 한라산으로
중산간마을 주민들은 토벌대 명령에 따라 해변마을로 소개했지만 토벌대의 학살극이 그치지 않자 다시 한라산으로 피신했다. 당초 소개작전의 목적은 무장대와 일반 주민을 분리시킨다는 것이었는데, 토벌대의 무분별한 행동은 오히려 주민들을 산 쪽으로 쫓아내는 결과를 빚었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남편이 어디론가 사라져 ‘도피자 가족’이 된 부인은 늙은 시부모와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눈 덮인 한라산으로 향했다. 토벌대의 총부리에서는 벗어났지만 피난생활은 너무나 처절했다. 겨울철 한라산에는 살을 에는 추위만 있을 뿐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웠다. 많은 피난민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었다.
여성들의 이중 수난
여성들은 극단적 상황 속에서 성적 유린까지 당하는 등 이중으로 고통을 겪었다.
또한 경찰은 임산부를 발가벗겨 나무에 매달아 놓고 대검으로 찔러 죽이기도 했다.
불바다 된 중산간 마을
토벌대가 저지른 방화로 깊은 중산간 마을들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버렸다.
가옥 2만여 호, 4만여 동이 소실되는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에 타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중산간에 남아있던 주민들이 집단으로 희생되었다.
해원의 퐁낭
제주의 퐁낭은 공동체적 만남과 해원의 신목을 동시에 상징한다.
해원의 퐁낭을 통해 4··3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생각하고 희생자 영령을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쪽 벽면에 방문한 사람들의 느낌을 메모한 엽서를 걸어두는 코너가 있다.
나도 몇 자 적고 동참했다.
엽서가 놓인 옆에는 제주 4·3 평화재단에서 계간으로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 <4·3과 평화> 홍보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