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자라고, 엄마는 깨닫는다
아이는 오늘도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그 작은 입으로, 또박또박.
옴! 마! (엄! 마!)
빠! (아! 빠!)
발음이 완벽하지 않아 더 사랑스러운 그 소리들이
나를 하염없이 미소 짓게 만든다.
이 아이가 우리를 그렇게도 불러댔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
아이를 재우고 난 밤이면,
흐르는 듯 지나가버린 일주일과
짧았던 주말을 다시 떠올리곤 한다.
이 작은 존재 하나 덕분에
우리 부부도, 부모님도,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가 '순수한 행복'을 느낀다.
이 아이에게 감사하다.
기쁨을 주어서 고맙고
감동을 주어서 고맙고
행복을 주어서 고맙다.
16개월.
아이가 태어난 지 벌써 이만큼이나 지났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이젠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듣는 듯하다.
냅다 울기만 하던 때를 벗어나
이제는 '표현'이라는 것이 생겼다.
기분이 좋을 때, 나쁠 때, 속상할 때, 불편할 때
나름대로 표현을 한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 표현들이 조만간 '떼씀'으로 이어지겠지?
그래도 괜찮다.
좋은 날도, 힘든 날도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는 뜻이니까.
요즘 아이는 귤에 푹- 빠졌다.
귤만 보이면 까달라고 들고 온다.
임신했을 때 그렇게 달고 신 과일만 찾았었는데.
귤을 오물오물 먹는 모습만 봐도
세상이 다 흐뭇해진다.
2025년 겨울,
우리 집에 귤이 떨어진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사실.
꼭 기억하고 싶다.
"오늘은 귤 그만~"
단호하게 이야기하면,
속상해서 입을 삐죽삐죽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얼~마나 귀여운지
그 모습에 녹아
결국 반 개 정도 더 쥐여주고 만다.
아이가 코를 찡긋하며 웃어주는 순간이면
나는 또 녹아버린다.
'이런 존재가 어떻게 내 뱃속에서 나왔지?'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감탄한다.
너무 사랑해서 콱! 깨물어주고 싶어
글자 그대로 표현이 와닿는다.
10년 뒤, 20년 뒤 아이를 상상하면
지금 이 순간이 벌써 그리워진다.
가끔 생각한다.
아, 이 시간이 멈췄으면.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건네지만
백 번, 천 번을 말해도 모자란 게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아이를 바라보며 깨닫는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주신 사랑이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컸다는 사실을
나는 서른 살이 넘어서야
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느낀다.
사람은 직접 경험해 봐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말이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낳아봐야 안다-
지금 이렇게 느끼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엄마의 사랑이 더 크다.
아이를 낳고 나니, 선명해진 한 가지.
나는 죽을 수 없다
어릴 땐 힘들면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가볍게 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없다.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열심히 살아내야만 한다.
무슨 일이든 버텨내야만 한다.
이 아이가 있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깡다구'가 생겼다.
아줌마가 되어간다는 건,
이런 마음 때문인가 보다.
예전엔 우리 엄마가 억척스러워 보여
괜히 창피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알게 되었다.
엄마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아이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들이
결국 나를 엄마로 살게 한다.
아이를 품고, 또 나를 품어준 엄마를 떠올리며
오늘도 서툴지만 천천히 엄마의 삶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