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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터줏대감

by 여유

할머니는 청주 서문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사람들은 할머니를 터줏대감이라고 불렀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서 터줏대감이라 했나 보다.

가게를 따로 얻은 건 아니고, 노점상을 했다.
고춧가루, 메주, 된장, 간장, 고추장 등 전통 음식을 팔았다. 할머니는 고추를 사다가 방앗간에 가서 빻기도 했다. 그 외의 것은 직접 손으로 만드셨다.


엄마가 옴으로써 할머니의 일은 한결 편해졌다. 할머니가 만들던 장의 비법은 엄마에게 전수되어. 이제 더 이상 힘들게 만들지 않아도 됐다. 전용 후계자가 있으니까.

엄마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가정주부였다. 지금 들어보니 일반 가정주부는 아니었다.


집에서 메주를 쑤고, 된장을 담고, 간장 만들고, 방앗간에 가서 고추도 빻는 일과 가정일을 병행했던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가내수공업이다.

방앗간에서 일 보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기계 앞에서 일일이 메주콩 한두 알씩 직접 넣어 갈아야 했다. 그것도 오빠를 업고.



동생이 태어나기 전 엄마는 큰 결심을 한다.
할머니의 노점상을 치우기로.
깜깜한 밤, 할머니의 노점상의 집기를 다 버렸다. 할머니는 그날 이후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한동안 서문시장에서는 터줏대감이 죽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엄마가 오랜만에 시장을 찾아갔을 때 사람들이 엄마를 알아보고는

사람들 : 할머니 돌아가셨어요?

엄마 : 추운 날씨에 이제 그만 쉬셔야죠.



할머니의 별명은 하나 더 있었다.
고춧가루 할머니. 진짜 고춧가루 때문인지 할머니의 매운맛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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