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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움큼, 한 움큼. 그게 내 과자였다.

by 여유

난 거의 할머니 손에 자랐다.
엄마는 늘 바빴다.
공장의 사장이었고, 의상실 사장이었고, 납품업체의 사장이었다.
하여튼 엄마는 늘 바빴다. 평일, 주말, 낮과 밤이 없었다.


친할머니와 한 집에 살았던 우리 가족.
엄마는 퇴근 후 청소하고, 빨래하기 바빴다. 잠잘 때는 서로 엄마 옆에 자겠다고 싸우는 우리를 안아주느라 힘들었다. 새벽에는 가족들이 먹을 국 두세 개,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출근했다.


엄마를 대신해 친할머니가 삼 남매의 밥을 챙겨주실 때가 있었다.
어느 날, 밥을 먹다가 할머니한테 혼이 났다. 아빠 밥이었다. 너무 어렸기에 많고, 적음을 몰랐다.
그날 나의 행동은 밥상의 웃음거리가 됐다.




엄마는 일을 나가면서 할머니한테 총 세 개의 과자를 사주고 나갔다. 할머니 과자는 따로 있었다.


오빠, 동생, 내 거.

오빠와 동생에게 각각 한 봉지씩 수여된다. 그러면 할머니는 작은 그릇을 꺼내 오빠 과자 봉지에서 한 움큼. 동생 과자 봉지에서 한 움큼을 집었다. 그리고는 그릇에 놓았다.


그게 내 과자였다.


너무 어려서 그걸 몰랐다. 엄마 역시 그걸 몰랐다. 어느 날 오빠가 말한듯하다.

난 그렇게 내 것을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밥상 위의 세 그릇. 내 밥그릇은 없었다. 할머니 밥, 오빠 밥, 동생 밥.

아빠가 있던 날 그 커다란 밥공기가 내 밥인 줄 알고 신나게 먹은 날.
할머니는 어린 나를 먹는 걸 탐내는 계집으로 만들었다.
먹는 걸 탐내는 게 아니라 진짜 배가 고픈 거였다.


그 사실을 안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 후로 과자는 집 앞 슈퍼에서 1인당 하나씩 정해진 금액 안에서 직접 선택해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때 난 오롯이 내 것을 먹을 수 있었다.

밥은 엄마가 늘 챙겨줄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삼 남매 중 나는 가장 말랐었다. 오빠와 동생은 통통하고 반짝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때 덜먹어서 이 정도지.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많이 먹었다면 돼지가 됐을 거다. 다이어트를 시켜준 할머니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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