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계집애는 아니었나 보다.
할머니는 지금 생각해도 진짜 힙했다.
여느 할머니 같지 않았다. 당시 나이가 60이었던 할머니.
패션이 남달랐다. 금색 테에 알이 큰 안경을 썼다.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하얀 흰머리를 참빗으로 곱게 빗고, 은색 비녀로 머리를 쪽 졌다.
한복을 기본 베이스로, 버선, 고무신을 신었다. 여름에는 민소매를 입었고, 가을에는 직접 리폼한 아노락을 입었다. 흰 치마와 아노락. 정말 잘 어울렸다.
할머니는 그렇게 옷을 입고 대꼬바리를 물고 있었다. 30센티 정도 되는 담뱃대다.
끝이 움푹 파인 곳에 담배를 쑤셔 넣었다. 주먹 두 개 크기의 성냥갑에는 성냥들이 가득했다. 성냥을 이용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럼 연기가 담뱃대 끝에서도 나오고, 할머니 입에서도 났다.
엄마 친구가 말하길 요즘은 계집애들이 담배를 길거리에서 피워 무서워 쳐다보지를 못하겠다고 하는데.
우리 할머니는 계집애가 집에서 대놓고 폈으니 할머니도 보통 계집애는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열심히 피고 피워, 기관지가 안 좋았던 할머니는 항상 은색 통을 가지고 다녔다. 그건 바로 용각산. 그 안에는 하얀 가루가 있었고, 작은 스푼이 하나 들어 있었다. 기침 날 때마다 할머니는 용각산 뚜껑을 열어 가루를 한 스푼씩 퍼 입에 머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일하던 중 할머니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게 문을 닫고, 할머니를 등에 업고,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가 할머니에게 꺼낸 첫마디 할머니가 문제가 아니라 며느님이 치료를 받아야겠어요
키도 작고, 뼈밖에 없는 엄마가 건장한 장신의 할머니를 둘러업고 왔으니, 누가 봐도 그 말이 나오지 않았겠나. 진짜 엄마는 건들면 픽하고 쓰러질 정도로 말라있었다.
아침은 고사하고, 점심 한 끼만 먹으니 기운이 남아 있을 리 없지. 엄마는 할머니의 모진 괴롭힘에 겸상할 생각을 거뒀다고 한다. 점심은 회사에서 직원들과 먹고. 저녁은 안 먹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대꼬바리 담배로 기관지가 안 좋은 것뿐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건강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할머니를 위해 사시사철 보약을 지어먹였다. 할머니는 나를 상대로 효자손 검도를 할 만큼 기운은 좋았다. 할머니는 진짜 아팠을까? 진짜 아픈 건 엄마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