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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유일한 지원군

by 여유

시집의 구성원은 시어머니. 장남인 남편, 남동생 둘이었다.


오빠를 낳기 전 엄마는 가정주부였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 손으로 직접 빨래를 해야 했다. 엄마는 가족의 빨래를 도맡았다.


작은 아빠는 페인트 일을 했고, 아빠는 건축 일을 했다. 작업복들은 무겁고, 빨래하기 힘들었다. 하루하루 뱀 허물 벗듯, 벗어젖히는 빨래. 치워도 치워도 끝도 없이 내리는 눈처럼 쌓여만 갔다. 할머니의 옷들은 거의 한복이었다. 조심히 관리해야 했고, 다림질까지 해야 했다. 엄마는 빨래를 하러 온 건지 결혼을 한 건지 복잡했을 것 같다.

그전까지 이 빨래는 누가 했을까?

가족들은 미안한 내색도 없이 홀랑홀랑 속옷까지 당당하게 내놨다고 한다. 그러다 가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빠가 빨래를 도와주면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 후 얼마 안 가 셋째 작은 아빠의 결혼으로 빨랫감은 줄어들었다. 엄마에게 셋째의 결혼은 짐을 더는 일이었다. 아니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는 길이었다.


빨래도 빨래지만 다들 밥을 차려주면 한꺼번에 먹지 않고, 따로따로 먹어서 아침만 두세 번 차리기 일쑤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 자식도 아닌 삼 형제를 뒤치다꺼리하는 것도 엄마 몫이었다. 그렇게 엄마의 짐 3분의 1이 떠나갔다.

세탁기가 등장했다. 집에 세탁기가 들어왔다. 언제쯤 들어온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세탁기는 집에 같이 사는 그 누구보다 엄마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다. 아니 유일한, 하나뿐이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가? 세탁기의 고장은 엄마를 심란하게 만든다. 새로 사면 되는데, 마치 애도 기간이 있는 것처럼 긴 시간이 흐른 뒤 구매한다. 엄마는 지금도 세탁기를 아주 귀하게 여기고, 모신다. 물에는 닿지 않게 관리하고, 보호용 필름은 떼지 않는다. 세탁기의 수명이 다 하면 엄마와 상의 후 구입하는데, 엄마는 점점 큰 킬로 수로 업그레이드한다.

엄마 마음이 이해가 간다. 든든한 엄마의 지원군이기 때문에.
점점 킬로수를 늘리나 보다. 엄마의 지원군이 커질수록 나의 부담은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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