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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끝내고 싶은 이야기

산소 관리하기

by 예담

“동생 다음 주 주말 시간 되나?” 여기저기 벌초를 알리는 남편의 전화기가 바쁘다. 아하 또 추석이다가 오고 있구나, 피할 수 없으니 즐기자 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전화하는 소리에 나는 냉동실부터 정리한다. 생수, 캔 커피, 이온 음료, 사다 냉동실에 얼린다. 아이스박스가 터지도록 음료를 준비하고, 다음은 토시에 챙 넓은 모자, 장갑, 장화까지 완전무장 전장에 나가는 군인의 자세다.

주말 새벽 4시 핸드폰의 알람이 띠링~ 띠링~ 요란하게 울어대며 곤한 잠을 깨워준다. 대충 눈곱만 떼어내고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 예약해둔 전기밥솥의 밥을 퍼 대충 국에 말아 한술 뜨고 차에 시동을 건다. 인천에서 고향 선산이 있는 공주로 달린다. 조금만 늦으면 차가 밀려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 서둘러야 한다. 추석을 맞아 조상님들의 산소 벌초를 위한 자동차의 행렬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서둘러 출발한 덕에 새벽이슬이 마르기 전에 도착한다.

얼른 창고에 모셔둔 예초기를 꺼내 휘발유도 채우고 손을 보고 있노라면, 고향에 사는 육촌에 사촌 친척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이슬이 걷힌다. 예초기를 메고, 또 갈퀴와 삽, 낫을 들고 줄지어 산으로 오른다. 해가 중천에 오르고 나면 먼 도시에 사는 친척들까지 모두 모인다. 윙~윙~윙~ 여러 대의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에 조용하던 산이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가을 햇살은 마지막 하나까지 곡식을 익히려 따갑다. 더위에 지친 벌초 꾼들의 갈증과 허기를 달래주는 아이스박스의 뚜껑도 분주하게 여닫히며 바쁘다.

두어 그루 남은 밤나무 밑은 토실토실 영글어 떨어진 알밤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동서와 함께 밤을 한 이름씩 줍고, 추석에 송편을 만들 솔잎을 한 봉지씩 딴다. 그리고는 얼른 산 아래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고가 밑으로 내려온다. 미리 식당에 주문해 놓은 50인분의 점심이 배달된다. 얼큰한 육개장은 큰 솥에 가스통째 배달되면 식지 않게 가스에 불을 약하게 붙여 올려놓는다. 밥은 무더기로 퍼 중간중간 놓고, 국 한 그릇씩 떠 주면서 국에 밥을 말아 먹도록 한다. 더위에 아침부터 수고한 벌초 꾼들은 국에 만 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다행히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고 워낙 많은 사람이 함께하니 점심 먹을 시간이면 거의 끝난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오래전부터 매듭짓지 못했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산소를 정비하자, 계단식으로 정리해서 1대부터 현재 우리인 7대 순으로 봉분을 없애고 평토장으로 하자는 의견이 또 나왔다. 내가 듣기로 20여 년 전부터 해왔던 이야기로 알고 있다. “조상 묘는 자꾸 들추는 거 아녀, 자식들 잘되고 별 탈 없는디 왜 못 건들여서 그려”반대 의견도 해마다 같은 의견이다. 반대 의견과 찬성 의견이 팽팽하듯 분위기 또한 긴장감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간다.

그 분위기에 기름을 붓듯 교회 장로인 육촌 시동생은 한술 더 뜨며 갑자기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그것도 과도기다 매장은 이제 필요 없다. 산 말랭이 멋진 소나무 아래를 예쁜 돌로 장식해놓고, 화장한 시신의 재를 한 줌씩 뿌리고 그 위에 물을 뿌려주면 아래로 스며들며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란 말에 “어떤 고추 불상놈들이 하는 짓이여? 제 조상들을 한데 뒤죽박죽 섞어서 뿌리냐 쓸데없는 소리 허지도 마러” 화가 극에 달한 어르신 한 분이 버럭 고함치며 고성이 오간다.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이 지루한 평행선 싸움에 이제는 질려서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해마다 진전없는 토론이 답답하기만 했다.

종손인 나의 남편이 확고하게 나서서 결정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 역시 조상 산소 건드리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으니 한 해 두 해 미뤄지고 있다.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시댁 집 뒤에 있는 선산에는 멋진 소나무, 감나무 밤나무가 우거지고 맛있는 밤과 감을 따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현재는 어떤가? 그 멋진 아름드리나무들을 베어내고 그 자리를 산소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이젠 더 이상 산소를 만들 자리도 없다. 그리고 지금 예초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모두 나이 든 사람들이다. 현재 어른들이 떠나고 나면 저 넓고 많은 산소를 젊은 세대들이 어찌 관리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더 나이 들어 기력 떨어지기 전에 종손인 남편이 결단을 내려 관리하기 편하게 해야 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잔소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은 여느 때와 다르다. 쓸데없는 잔소리라 귀담아듣지 않던 남편이 귀담아들어 준다. 본인도 더 이상 젊은 애들에게 물려 줄 수 없고, 나이 듦을 느끼는 모양이다. 깊은 한숨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니 그 정도만 하소” 하고 말한다. 남편의 한숨 속에는 이제껏 외면해 온 수많은 세월의 무게와 변해가는 시대 앞에서 느끼는 종손으로서의 고뇌가 함께 담겨있는 듯했다. 그 한숨은 내 가슴에도 깊은 무게감과 함께 시대의 변화를 적절히 받아들여야 함의 암시인 듯 이제 길고 긴 논쟁을 끝낼 것 같은 기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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