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보내며
추석이 추썩 추썩 다가온다. 올 추석은 연휴가 길다. “우리 이번 긴 추석 연휴에 뭐 할까요?” 하며 남편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뭐 하긴 뭐 해 차례 지내고, 아버지 제사 지내야지”혹시나 했던 대답이 역시 나다.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에 무슨… 큰 기대 없이 한 질문이지만 대답을 듣는 순간 기분이 확 상한다. 휴~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포기해 버렸다. 연휴가 긴 만큼 생각도 많아진다. 사람들은 연휴에 여행이다 뭐다 난리다. 나도 모처럼 긴 연휴를 좀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으나,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다.
혹여 아이들도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지는 않을지? 혹시 명절에 안 온다고 할까 봐 걱정된다. 아직 남편은 명절에 차례를 모시는 사람으로 본가에 오지 않는 자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더구나 추석 이틀 뒤인 팔월 열일레 날이 시아버님의 기일이다. 차례는 생략하고 시아버님의 기제사만 모시자고 수차 졸라댔지만 목석같은 남편은 묵묵부답이다. 차례는 기제사보다 가볍게 여겨 생략하거나 여행 중이나 산소에 가서 모시는 경우가 흔해졌다. 추석 연휴 차례 지내고, 곧이어 처음 출근하는 날 또 시아버님의 기제사를 모셔야 하는 부담에 그간도 힘이 많이 들었다.
지지난해 추석 때다. “형 우리도 추석 차례를 지내든, 아버지 제사를 지내든. 한 번만 지내지요. 여자들도 생각해 주자고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편은 “뭐라고? 넌 오기 싫으면 오지 마!” 멋대가리라곤 하나도 없는 두 형제의 대화다. 말을 꺼낸 동생도 답을 한 형도 무안한 표정으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전을 부치고 있던 동서와 나는 깜짝 놀라 서로 마주 보았다. 동서는 얼굴이 귀밑까지 붉어지며 “저 사람 갑자기 왜 저런데요. 왜 내 핑계를 대고” 하며 시동생을 책망했다. 아니지, 제수씨나 동생이 그동안 그 정도 잘 참여했으면 이젠 추석엔 처가댁 차례도 챙기고 오지 말라고 배려할 법도 한데 말을 저렇게 한대, 하고 서로의 남편을 탓했다.
추석을 보내고 동서네가 돌아간 뒤, 동서는 그간 큰딸로서 친정아버지의 차례는 한 번도 모시지 못하고 양 명절을 시댁 차례에만 참석했다. ‘요즘 그런 사람 보기 드물다. 진작부터 추석에는 친정아버지의 차례를 모시도록 우리가 미리 배려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아버님 기제사에만 참석하라고 하자 설득 반, 협박 반으로 남편을 간신히 설득했다. 더구나 그해 여름 시작은 아버님의 타계로 작은댁도 차례가 있으니 우리 집 차례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뒤로 동서 가족과 작은댁 가족이 빠진 채로 아들 며느리와 단출하게 추석 차례를 모시게 되었다. 남편은 은근히 그런 추석을 쓸쓸 해했다. 나는 오히려 편하고 좋기만 한데 남편과는 입장 차가 크다.
이번도 긴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아이들 언제 온대요?”하고 묻는다. 매번 미리 오지 않고 명절 전날 와서 하룻밤 자고 가는 게 전부인데… 요즘 아이들 그것도 황송해하자고 그리 말했건만 남편의 질문에 짜증이 훅 올라온다. “언제 오긴요. 추석 전날 오겠지, 애들 바쁜 것 몰라요?”하고 톡 쏘아붙였다. 긴 연휴에 아이들이 혹시나 일찍 오려나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거기 까지는 그냥 넘겼다. 추석 이틀 뒤인 시아버님의 기일이 문제다. 추석 지내고 이틀 뒤인 그날이 매번 불화의 씨앗이 된다. 요즘 아이들 하룻밤도 시댁에서 자고 가는 것 힘들어한다는데 그래도 명절 하루는 꼭 같이 자고 아침 차례도 모시고 설거지까지 깔끔히 마친 후 친정으로 간다. 내 마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기특하다.
하지만 남편은 조부모의 제사에 오지 않는 아이들에게 불만이 많다. 연휴 끝나고 첫 출근 하는 날이 시아버님의 기일과 겹친다. 아이들도 첫 근무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내가 남편을 다독였다. 남편은 서울에서 인천 퇴근 후 잠시 다녀가도 되지 않냐고 내게만 투덜댄다. 그런데 이번 추석은 연휴가 길다. 아이들도 모처럼의 연휴에 나름 자기들의 계획도 있을 텐데. 남편은 당연히 이번 할아버지 제사에는 오겠지 생각한다. 내가 중간에서 만들어줄 핑계도 없다. 제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아이들이니 연휴가 길어도 제사에는 참석하지 않을 텐데… 에라 나도 모르겠다. 서로들 알아서 하라지 하고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추석 전날 아이들을 맞았다.
며늘아이가 “어머님 이번은 연휴 가기니까 추석날 친정 잠깐 들러 집에 갔다가 할아버지 제삿날 다시 올게요” 하고 말한다. 고맙고 기특했다. 내심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 불편한 상황이 생길까 편치 않았는데, 다행히도 괜한 걱정을 한 셈이었다. 아이들은 제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데 남편은 아이들에게 제사의 의미를 강조하며 매번 조부모 증조부모 모두 참여하기를 종용하고 있다. “어른이 아이들을 가르쳐야지 제사도 가르치고” 하며 때론 나를 원망하기도 한다. 나는 조상의 제사는 그저 내 마음 편해지려고 모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제사를 모시고 안 모시고는 온전히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남편은 차례를 지내며 가르치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자세히 설명한다. “차례는 설과 추석 두 명절에 간소하게 지내는 약식 제사란다.”조상님께 인사드리고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기제사와는 다르게 밥과 국 대신 떡국이나 송편 같은 명절 음식을 올리고, 술도 한 번만 올리고 축문도 읽지 않으니 절차도 간단하지.” 하지만 아빠는 조상님께 명절 음식을 대접하는 게 도리라 생각한다며, “그러니 꼭 참석해야 한다.”라고 본인의 마음을 내심 내비치며 강조하고 있다.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니 눈은 듣고 있으나 마음에는 담지 않는 듯하다.
‘제사 자랑은 하지 말라’는 말과 ‘남의 제사에 배 놓아라 감 놓으라 하지 말라’는 속담은 이런 뜻 아닐까? 제사는 결국 본인이 알아서 하는 것, 부모라고 해서 아이들에게 억지로 강요할 일은 아니다. 남편은 제사를 모시지 않으면 조상이 노해서 벌을 줄 것 같은 기분, 자기만족을 위해서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전혀 그런 마음이 없다면 굳이 그 형식에 치우치는 제사나 차례를 지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제사의 형식이나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다. 더구나 가르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제는 제사의 의미를 다시 묻고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