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하루
어쩌지! 아침부터 비상이다. 평생학습관 라인댄스 첫 수업 시작과 마사회 겨울 학기 수강 신청이 열 시로 딱 겹쳐버렸으니! 인기 강좌는 놓치면 끝인데, 첫 수업에 늦는 것도 영 찝찝했다. 그래도 어쩌랴, 오늘 신청 못하면 겨울 학기 내내 아무것도 수강하지 못할 텐데…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 두 대를 열어 마사회 사이트에 접속해 로그인해 놓았다. 그리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실내화를 가방에 넣고 시간을 기다렸다. 57분 58분 59분 초읽기가 시작되고 땡 열 시를 알린다. 먼저 데스크톱에서 '내 몸 바로 잡는 스트레칭' 신청이 완료되는 순간, 노트북으로는 '감성 통기타'를 재빠르게 신청했다. 여세를 몰아 '행복 노래 교실'까지 클릭! 우와, 계획했던 세 가지 강좌 모두 신청 대성공했다.
신청만 해놓고 입금은 미룬 뒤 후다닥 컴퓨터를 종료하고 준비해 놓은 실내화 가방을 들고 냅다 달렸다. 얼마나 달렸던지 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육 분 만에 헐레벌떡 도착했다. 평생학습관 백 사호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미 시작한 라인댄스, 강사님은 헐떡이는 내 모습이 보였는지 “천천히 들어오세요” 하고 말씀하신다. 다행이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가 이용하기 편리한 평생학습관과 마사회, 좋은 프로그램이 많은 시설이 있다. 처음으로 해보는 라인댄스, 그것도 첫 시간부터 지각이었다. 분위기 파악하느라 어정쩡한 한 시간 반의 수업이 끝났다. 집에 돌아와 신청한 강의 수강료부터 입금부터 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셨다. 오후에는 다시 요가 수업과 필라테스 수업이 있다. 두 가지 수업이 끝나고 나면 남편의 퇴근 시간이 된다. 저녁 준비까지 해놓고 다시 평생학습관으로 가야 했다. 전기밥솥에 밥 예약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요가 수업 갈 시간이었다. 요가 수업이 끝나면 잠시 쉬었다가 필라테스가 이어졌다. 두 가지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다리와 배, 허벅지가 땅기고 아프다. 그러나 기분 좋은 당김이고 흥분되는 아픔이다. 이런 뿌듯한 맛에 힘들어도 운동한다.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 동네 슈퍼에 들러 두부 한 모와 애호박 하나를 사 들고 왔다.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고 손질해 놓은 자반고등어를 자글자글 튀겨 퇴근하고 온 남편과 마주 앉아 저녁 식사를 했다. 그간 어린이집을 운영할 때는 저녁 식사도 거의 혼자이던 남편이 마누라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 시간을 좋아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의 식사도 소홀했었다. 이젠 바쁘기는 예전 못지않게 바쁘나 그런 핑계를 대기가 왠지 미안하다. 저녁 시간에 맞춰 귀가해서 저녁밥을 해놓고 남편을 기다리는 천상 착한 주부 모드로 변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다시 탁구장에 갈 시간이다. 나가면서 처리할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물을 들고 탁구장으로 향한다. 탁구장은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회원들이 퇴근하고 하나, 둘 모여든다. 오늘은 아침부터 마사회 겨울 학기 수강 신청에 라인댄스, 요가, 필라테스에 좀 무리했나 싶다. 그래도 마음껏 스매싱을 날리며 계획한 한 시간 삽 십 분의 탁구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씻고 일과를 정리하며 독서 모임에서 제시한 책을 펼쳤다. 띠리링 전화기가 울린다. 큰 언니다. “ 어떻게 지내는데, 전화 한 통 없니? 일을 안 해도 여전히 바쁘니?” “언니, 시간이 쓰잘 게 없어” “돈이 쓰잘 게 없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시간이 쓰잘 게 없단 소리는 첨이다.”하며 웃는다. 그간 하고 싶어도 못 한 것 이것저것 해보고, 배우고 싶었던 것도 배우고, 또 소홀했던 남편 밥도 신경 쓰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말했다. 언니, 왈 “그 나이에 꼭 천사표 마누라 될 필요 없다. 꼭 시간 맞춰 끼니 챙길 것 없이 서로같이 해 먹어, 그간 일하며 힘들게 지냈으니 좀 편하게 지내라” 하며 동생 편을 들어준다.
언니와 통화를 마친 후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란다. 일 있으면 내 식사 걱정하지 말고 볼일 보란다. 그 말이 고맙다. 그래서 나는 대안을 제시했다. 비상식으로 냉동실에 밥 두 공기와 국 두 그릇을 꼭 얼려 놓겠다. 다행인 것은 남편의 식성이 까다롭지 않다. 찬밥도 좋아하고, 반찬은 국이나 찌개만 있으면 문제 삼지 않는다. 그렇게 합의하고 나니 늦은 귀가에도 불편한 마음이 적어졌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동안 행복했다. 아이들과 함께함을 천직으로 알았고,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 보람과 즐거운 일이었다. 다른 일은 생각지도 안 했다. 그렇지만 항시 많은 신경을 쓰고 지냈던 것 같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설레는 감정을 자주 느낀다. 바람 소리마저 감미로운 음악처럼 느껴지고, 알록달록한 단풍은 세상 가장 아름다운 그림처럼 눈에 들어와. 마치 온 자연이 나만을 위해 빛나주는 것 같은 황홀경이다,
일하는 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이 참 많았다. 모두 도전해보고 있다. 시간이 없어 조금씩 하며 갈증 내던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선, 신나고 즐겁다. 이것저것 일정표를 맞춰 신청하느라 바쁘지만 설렌다. 육십 중반,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지금이 나는 제일 신난다. 나에게 꼭 맞는 취미와 재능을 찾아 오늘도 여기저기 즐겁게 달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