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진 회갑 여행
"여행은 다리가 떨리기 전 가슴이 떨릴 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며 오십 중반의 아줌마 여섯 명의 모의가 시작되었다. 시부모님 봉양에 자식들 뒷바라지 거기에 직장 생활까지 빡빡한 생활전선에서 정신없이 달려온 친구들이다. 이제는 '우리의 인생을 찾자!'라는 나름 거창한 공통 목표 아래 초등학교 동창생 여섯이 똘똘 뭉쳤다.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떠나던 정기 여행 모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따지지 말자!'라는 우리만의 구호 '빠, 삐, 따'를 외치며 분기별 정기 모임에는 직장에 휴가를 써가며 전원 참석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그리고 오 년 뒤인 우리 모두의 회갑을 기념하는 일명 '복룡 육 공주 회갑 여행'을 꿈꾸며 꼬박꼬박 적금도 붓기 시작했다. 돈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기대와 설렘도 커져만 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던 회갑이 되었다. 맙소사!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꽁꽁 얼어붙었다. 해외는커녕 국내 여행도 엄두를 못 냈고 네 명 이상 모임도 금지되었다.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카톡과 전화로 아쉬움을 달래며 어느새 몇 년이 그렇게 훌쩍 흘렀다. 그사이 모두 정년퇴직은 했지만, 각자의 건강 문제와 맞벌이하는 자녀의 손주 돌봄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에 부딪혔다. 회갑 여행의 꿈은 아쉽게도 점점 멀어지는 듯 느껴졌다.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르던 차 올봄에 양평 친구 별장에서 어렵사리 다시 뭉쳤다. 캠프파이어와 알코올 기운으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누군가 외쳤다. "우리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더 이상 육 공주 회갑 여행을 미룰 수 없다." 과감하게 날짜부터 잡았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길었다. 하지만 친구 여섯 명 중 네 명이 맏며느리다. 맏며느리에게 긴 추석 연휴는 그림의 떡이다. 그렇다면 추석 명절 끝나고 바로 다음 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무조건 시간을 비워 놓기로 약속했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날짜를 결정하고 나니 일사천리다. 시작이 반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해외는 여전히 불안하다는 의견에 장소는 국내의 이름다운 섬 제주도로 결정했다.
10월 14일 마침내 늦어진 회갑 여행이 시작되었다. 대전, 평택, 미사리, 일산, 안산, 인천 전국 각지에서 김포 공항으로 모였다. 일산에서 택시를 타고 달려온 총무는 추석 명절 후 혈압이 올라 가족들의 극구 만류를 뿌리치고 '총무로서 공항까진 가야 한다.'라 하며 간신히 빠져나왔단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면 혈압도 떨어질 것'이라며 한마음으로 총무를 설득했다. 우여곡절 끝에 육 공주 완전체 드디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푸른 바다와 뭉게구름이 몽글몽글 환상적이었다. 누군가 “모든 근심, 걱정과 아픔일랑 저 바다에 던져버리고 건강하고 신나게 놀자”라 말하자! 힘을 주어 서로서로 손을 맞잡았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총무 이름이 적힌 카드를 들고 젊은 남자 가이드가 떡하니 서 있다. 아줌마 여섯 명이 우르르 몰려가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다. "여자분들끼리 오신 건가요? 부부 동반 아니고요?" "예, 근데 왜요?!" 하고 물었더니, 정보는 이름만 받았는데 세 명의 이름이 남자 이름 같아서 부부 동반으로 알았단다. "이런! 누구요 김예식?"하고 물으니 "예"하고 대답한다. "그럼 지금부터 나한테는 예식이 형이라 불러요." 만남과 동시에 배꼽 잡고 한바탕 웃으며 나는 바로 가이드의 '형'이 되었다. 그렇게 여섯 명과 22인승 차의 운전부터 안내까지 해 줄 현지 가이드가 함께하는 삼박 사일의 제주 여행의 서막이 올랐다.
공항에서 바로 향한 곳은 한담 해안 산책로다. 해안을 따라 예쁜 카페들이 줄지어 있었다. 담백한 소금 빵과 커피로 늦은 점심의 허기를 간단히 때우고 곧장 곽지해수욕장 모래사장으로 달려갔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모래밭에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널따란 모래 위를 물 만난 강아지들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모래밭에서 가이드가 "하나, 둘, 셋" 하면 펄쩍 뛰란다. 무릎 관절을 걱정하면서도 다들 깔깔거리며 최선을 다해 뛰었다. 덕분에 생동감 넘치는 멋진 인생 샷도 건졌다. 저녁으로는 흑돼지구이를 든든히 먹고 숙소에 짐만 던져둔 후 “바다가 우리를 부른다!” 라 외치며 깜깜한 숙소 앞 방파제로 나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간 못다 나눈 이야기꽃을 피우다 밤이 깊어서야 아쉬움을 삭이며 숙소로 들어갔다.
다음날 계획했던 대로 차귀도행 배에 올랐다. 예전에는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무인도다. 배를 타고 오가는 길에는 독수리 바위 장군 바위라 칭하는 바위들이 기묘한 자태로 서 있다. 가이드의 찰진 입담과 설명을 들으며 차귀도 오름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리고 ‘초대형 파노라마 글라스’로 제주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는 보트 체험은 장관이었다. 유리 바닥으로 바닷속 물고기며 해초를 보며 달리는 맛도 몽환적이었다. 달리는 속도에 튀는 바닷물이 얼굴을 마구 때린다. 시원하고 짜릿했던 보트 체험이 끝나고 배에서 내린 후 서로 얼굴을 보며 깔깔거렸다. 튀어 오른 바닷물과 땀이 말라 얼굴에 하얀 소금꽃이 피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찍어 입에 대보니 짭조름하다. 그야말로 생생한 경험이었다.
노을 지는 저녁 시간 와흘마을 메밀밭으로 향했다. 메밀은 봉평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제주에도 메밀이 많았다. 이동 중에도 크고 작은 메밀밭을 봤지만, 와흘 메밀 마을은 어마어마한 규모다. 새하얀 메밀꽃이 바람에 물결치듯 일렁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디나 포토존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자인가 보다. 예쁜 꽃을 보자 "꽃이 예뻐 내가 예뻐?" 하면서 여기저기 포즈 잡느라 바빴다. 우리끼리라면 단체 사진 한 장 찍으려면 지나는 사람들 눈치 보며 부탁해야 했을 텐데 가이드는 사진 명소를 잘 알고 있어 단체 사진을 멋지게 척척 찍어준다. 편리하고 좋았다.
현지인 가이드 덕분에 식사도 주민들의 맛집으로 소문난 곳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더구나 제주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 비가 자주 오락가락했다. 현지 사정에 밝은 가이드가 일기예보를 꼼꼼히 살피며 비를 피해 동으로 서로 빠르게 이동해 주는 덕분에 제주 여행 중 단 한 번도 비를 만나지 않았다. 또한 친구들 모두 '빠삐따' 구호를 잘 지켜준 덕분에 모두가 즐겁고 행복했다. 심지어 혈압이 올랐던 친구도 혈압이 뚝 떨어지고 건강해졌다. “역시 제주도가 우리 체질이다!”라며 다음엔 제주 한 달 살기를 약속했다. 오롯이 우리만을 위한 삼박 사일의 빛났던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늦은 ‘육 공주 회갑 여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