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나의 애마
반복되는 일상에 몸과 마음이 나른해진다. 느슨해진 일상에 다시 활력을 업그레이드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문득 아파트 지하 계단 밑, 깊숙한 곳에 6년째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을 나의 애마, 자전거가 떠올랐다. 온 세상을 덮었던 코로나19 탓에 내 생활도 혼자만의 활동으로 바뀌었다. 자전거는 지하 깊이 넣어 둔 채 공원을 걷는 것으로 대체했다. 온 세상을 뒤흔들던 코로나19도 잠잠해졌고 퇴직 후 비로소 여유가 생겼다. 서늘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초가을이 되어서야 잊고 지냈던 자전거를 기억해 냈다. 유유자적 자연 풍경 누빌 때면 늘 동행했던 친구였다. 그간 컴컴한 지하 계단 아래 묵혀놓고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떨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찾아갔다. 오랜만에 찾는 녀석은 어떤 모습일까? 혹시 너무 오래되어 누군가 버리지는 않았을까? 문을 열고 먼발치 녀석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대로 있구나. 우선 안도하며 다가갔다. 뿌옇게 뒤집어쓴 먼지, 할머니 뱃가죽처럼 축 늘어진 바퀴, 덕지덕지 녹슨 체인, 얼기설기 쳐놓은 거미줄은 묵혀둔 6년의 흔적이 선명했다. 그런데도 녀석은 '다시 달려보자'라고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그제야 오랜 친구를 외면한 미안함에 가슴 한구석이 찡해왔다. 이 오래된 녀석이 나를 태우고, 아름다운 자연 속을 다시 힘껏 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설렘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마를 수리점으로 데려갔다. 사장님은 자전거를 아래위로 살펴보더니, "아직 쓸 만해요. 타이어만 교체하면 될 것 같아요. 자전거 자체는 좋은 것인데요"라고 말했다. 아직 쓸 만하단 말과 좋은 자전거라 칭찬까지 들었다. 안도의 한숨과 감사함에 목울대가 뜨거워지며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도 오랜 시간 함께한 자전거라 버리기는 아쉬웠어요”하고 감사함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의 민첩한 손길에 낡은 타이어는 새것으로 바뀌었고, 녹슨 체인에 기름칠이 더해졌다. 대충 닦아낸 거미줄과 먼지 사이로 나의 애마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끌고 갔던 애마의 수리를 마치고 떨리는 마음으로 안장에 올랐다. 나의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발판에 올려진 양발은 자연스레 바퀴를 힘차게 굴렸고, 자전거는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그 기세로 승기천으로 달려갔다. 노을이 물들기 시작한 승기천에는 이름 모를 풀벌레와 새들이 노래로 반갑게 맞이해 준다. 자전거를 타고 스치는 라이더들의 인사도 정겹고 반가웠다. 오랜만의 애마와의 데이트는 저녁 바람에 날아갈 듯 상쾌했다. 폐부 깊숙이 시원한 공기가 차오르며 숨통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허벅지는 오랜만에 기분 좋게 긴장됐다. 복잡한 생각과 쌓인 스트레스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 머릿속은 쨍하게 맑아졌다. 자동차로는 별 감흥 없이 쏜살같이 스쳐 지났을 길이다. 숨겨진 길 위의 아름다움을 애마를 타고 지나며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 익숙한 풍경조차 자전거 위에서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짧지만 짜릿했던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왔다. 수세미와 세제로 녀석의 구석구석을 닦아줬다. 먼지와 때를 말끔히 걷어내자 예전의 반듯한 모습을 되찾았다. 멋진 나의 애마를 두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앞으로 세상 곳곳 멋진 풍경을 찾아 함께 달려줄 친구다. 잃어버렸던 일상의 활기와 삶의 즐거움을 이젠 나의 든든한 친구 자전거와 함께 행복하게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