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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Sep 16. 2024

가다가 아니 가도 거기 간만은 하다

철인 삼종 경기 도전 실패기 

결혼과 동시에 내 작은 몸에 대명사가 하나씩 붙기 시작했다. 그 대명사들 위에 그의 역할 또한 줄줄이 달라붙는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종갓집의 7대 종손부, 그리고 누구의 엄마, 그러다 어린이집 원장, 또 방송통신대학 학생이란 많은 대명사가 붙으며 늘어나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대명사만큼이나 그에 맞춰 요구되는 역할도 다양하고 많아졌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까지 내 이름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다른 대명사의 역할에 충실해야 했다. 

   

사십 대 초반 시골에 사시던 시부모님께서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시다 모두 떠나시고 나니 내 몸에서도 이상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삶의 개선이 필요하지, 싶다. 다양했던 내 역할을 조금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건강을 챙기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우선 어릴 적 시골에서 “여자가 무슨 자전거냐” 호통치시던 아버지 몰래 서너 번 타봤던 자전거부터 시작했다. 혼자서 자전거를 끙끙거리며 반은 끌고 반은 타며 소래 생태공원으로 간다. 생태공원의 좁은 길을 달리며 넘어지고 일어서 다시 달리다 고꾸라지며 배웠다. 그렇게 생태공원을 돌다 보면 집에 돌아갈 에너지가 바닥난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한다. “데리러 오지 않으면 집에 못 가요” 배짱 있게 부탁인지 명령인지 모를 주문을 한다. 아직은 마누라가 필요한지 구시렁거리면서도 곧잘 데리러 와주었다.

   

자전거를 타다 철인삼종경기를 알게 되었다. 도전해보고 싶어 내 마음속에 접수했다. 철인 삼종 경기 종목인 자전거, 수영, 마라톤 모두가 내겐 초보다. 더구나 일과 양립하며 도전해야 한다.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60대 이전까지 도전하자 장기 목표로 잡았다. 물에서 맥주병이지만 배우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삼 개월의 수영 강습을 신청했다. 저녁 퇴근하기 무섭게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강습이 없는 날이나 주말에도 수영장에서 살다시피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삼 개월 만에 접영도 비슷하게 흉내를 내는 수준까지 되었다. 수영의 매력에 빠져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인천환경공단 가스 기지에 있는 수영장에 가서 수영하고 다시 자전거로 돌아오며 자전거와 수영을 한꺼번에 연습하는 방법을 즐겼다.

   

마라톤도 준비해야 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몰려오는 잠을 쫓으며 캄캄하고 삭막한 도시의 보도블록 길을 혼자서 달렸다. 가끔은 달리다 외롭고 고독감이 밀려온다. ‘꿀 같은 잠을 잘 시간에 잠과의 사투를 벌이며 힘들게 왜 이러고 있지?’하는 회의감도 들곤 했다. 하지만 포기란 배추 셀 때만 쓰는 말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달렸다. 점점 운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수영장에서 하던 수영을 영흥에 있는 십리포 해수욕장으로 가서 바다 수영 연습도 했다. 그렇게 준비하다 보니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 과정을 즐기던 사이 세월이 너무 빠르게 흘러 내 철인삼종경기 도전의 마지노선인 60세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그렇게 버킷리스트였던 철인삼종경기는 도전에 실패했지만, 도전 과정이 참으로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때 열심히 배워놓은 수영 덕분에 주말이면 가끔 언니들과 수영장에 가서 동심으로 돌아가 물장구도 치고 수영도 가르치며 즐긴다. 자전거는 봄이면 연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관곡지의 농노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달린다. 가을이면 바람이 살랑이며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이름다운 가을 길을 빨간 헬멧에 검정 고글을 쓰고 폼 나게 달릴 것이다. 옛말에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다”란 말이 있지만 나의 철인삼종경기의 도전은 가다가 말았어도 가다가 만 거기 간만은 하다. 젊은 날의 열정으로 준비했던 철인삼종경기 덕분에 지금도 행복한 시간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다. 바쁜 틈이었지만 수영과 자전거를 배워 둔 것이 내 인생의 신의 한 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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