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원장 Sep 09. 2024

며늘 아이에게 보낸 편지

새 아가에게 

 아가야 어저께 네가 보내준 카톡과 사진을 보고 몇 자 적어본다. “어머님 조석으로 바람이 조금 선선해졌어요. 이제 가을인 것 같아요. 곧 추석이네요. 그때 뵈어요.”라고 쓰고 핸드폰으로 찍은 서울 한 복판아파트에서 고추 말리는 사진과 파랗고 높은 가을 하늘 사진을 보니 옛 추억에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지더구나. 고맙다. 유난히 무덥던 더위도 이제 서늘한 가을바람에 서서히 밀려가고 청명한 하늘을 자랑하는 이름다운 계절 가을이 왔구나 싶다. 올여름 더위에 애 많이 썼구나!


 명절에 보자는 너의 말에 너희 결혼하고 첫 명절이 생각나 입가에 피식 웃음을 띄워본다. 식탁 의자 끝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불편하게 앉아 있는 네 뒷모습에서 30여 년 전 이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더구나, 아궁이 앞에 부지깽이를 들고 앉아 타다 남은 재만 애꿎게 토닥이고 있는 모습 말이다. 방에서는 유쾌한 웃음소리와 즐거운 대화로 시끌벅적한데 어색하여 함께하지 못하고 부엌에서 엉거주춤 앉아 쉬는 건지 일을 하는 건지 알지 못할 자세로 친정집을 그리워하며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전생에 내가 이 집안에 대역죄라도 지었나? 명절에 그리운 우리 집에도 못 가고 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의 식사 수발을 왜 들어야 하는 건가?’ 하는 서러운 생각을 했었단다. 

   

결혼하고 처음 시댁에서 맞은 명절에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정쩡하고 불편했던 예전의 내가 생각나 갓 결혼한 너는 시댁에서의 명절 조금이나마 덜 어색하고 덜 불편하게 해주고 싶어 편히 하라 말했지만, 편히 앉지 못하고 식탁 의자의 끝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앉아 있는 네 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시댁 불편해하고 잘 오지도 않는다는데 너는 양 명절에도 꼭 와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차례도 함께 지내고 불편하다는 시댁을 자주 찾아와 주니 흔히들 하는 말로 “요즘 애들 참 이상하다.”란 말이 이 엄마에게는 무색하구나.

   

곧 돌아올 명절에도 같이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내는 것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구나, 올해 추석 유난히 긴 황금연휴에 아들 며느리 놀러 갈 계획만 세운다는데 그런 생각하지 않고 명절 차례에 참석하는 너희가 참으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네 시아버지께서 7대 종손으로 기제사와 명절 차례를 목숨 지키듯 지키고 계시니 이 엄마도 아직은 뾰족한 수가 없구나. 몇 번이고 기제사나 차례를 줄이자 요구해 봤지만, 언쟁만 생길 뿐 소득이 없었단다. 지금은 네 시아버님 설득을 포기하고 엄마 생전 그에 맞춰 주기로 하니 차라리 마음은 편해지더라. 

   

하지만 너희들에게까지 강요하고 싶지는 않은데… 네 시아버님도 좀 더 나이 드시고 세월이 지나면 변하지 않으실까?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며 때를 기다려 보자꾸나! 그러다 보면 아버님께서도 편안히 이해해 주실 때가 오리라 생각한다. 요즘 아버님도 아주 조금씩은 변하신단다. 지난 너희 시 증조부님 기일에도 엄마가 원장 필수 교육이 있어서 교육에 참여하느라 시간이 없어 삼 전을 못 하고 한 가지 전만 준비하고 닭도 삶지 못해 통닭구이로 대체했단다. 예전 같으면 어림없으실 네 시아버님께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으시단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옛것이라면 무조건 배척하려 하지 않고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하며 받아들여 주고, 나이 든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해 주는 네가 더없이 고맙구나. 그리고 아가야 알고 있나? 네게 특별한 재주가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심리를 꿰뚫고 공감해 주는 아주 훌륭한 재능이지 그래서 너와의 대화는 언제나 유쾌하고 행복하단다. 그건 엄마도 너에게 꼭 배우고 싶은 너의 훌륭한 강점이란다.

   

우리 앞으로도 엄마는 젊은 세대의 입장을, 너는 조금 나이 든 사람들의 입장을 서로서로 이해하며 지금처럼만 잘 지내자 며칠 전 인터넷에서 바보 같은 여자 세 가지 중에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란 말이 있더라 그런데 엄마는 영원히 너를 딸 같은 또는 친구 같은 또는 동료 같은 며느리로 지내고 싶구나. 바보 같아도 좋으니 우리 지금처럼 그렇게 지내자. 아무튼 이번 추석에도 만나서 행복한 시간 보내고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응원과 지원을 해주며 동반성장 하는 동료 같은 고부 사이로 잘 지내자꾸나! 사랑한다 며늘 아가야! 다음 만날 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렴!     

                                                              2024년 8월 31일      

                                                                     시 엄마가           

이전 13화 일의 가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